특교정식特敎定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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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儒生勿枷[英祖 41年(1765)]
▷ 유생의 착가금지
英宗四十一001
註 001 『受敎定例』: “四十一”⇒“三十七”.닫기
年, 傳曰, “古人云, ‘士〈可殺〉002
註 002 원문은 “可殺”이 없으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不可辱.’ 曾於庭試聞之, 場中不謹儒生, 自試所着枷下送, 闕003
註 003 원문은 “關”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內亦然, 試所可知. 渠雖無狀, 其名則士也. 此後雖下該曹者, 勿爲自試所以枷下, 若非場中用情, 雖下該曹, 勿枷事, 永爲定式.”

註 001
『受敎定例』: “四十一”⇒“三十七”.
註 002
원문은 “可殺”이 없으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3
원문은 “關”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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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刑推一日無過一次[英祖 44年(1768)]
▷ 형추한도는 1일1차
英宗四十四年, 傳曰, “頃年在邸時乃聞, 故判書洪啓迪, 有月臺刑推之事, 故金奉朝賀, 爲法官時, 身被衰麻, 不謹001
註 001 원문은 “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行身者, 自憲府草記刑推. 此嗣服後予聞者, 而近者或不無此等之事. 噫, 緹縈002
註 002 원문은 “索”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豈不云乎. 刑者不可復續. 風聞月臺, 不計杖數, 其事酷矣. 不可輕施者, 其令柏府知悉, 雖有刑推之事, 一日無過一次事, 定式. 因此以聞, 奉003
註 003 원문은 “奏”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命御史, 亦有此例云, 關係莫重者, 無過二次, 御史杖問, 雖連三次刑推云. 此法一體嚴禁.”

註 001
원문은 “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索”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3
원문은 “奏”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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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罪囚撞問[英祖 46年(1770)]
▷ 죄인에 대한 당문
英宗四十六年, 傳曰, “今因編緝校正堂上最中所奏, 不覺感001
註 001 원문은 “或”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歎. 壓烙之刑, 予皆次第除之, 而其壓, 卽嗣服初先除者, 以朱杖撞問, 雖非壓烙之比, 其酷滋甚. 此非律文, 今無可除者, 隨事輒施, 隨意其速, 無加於此, 何謂002
註 002 원문은 “請”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速也. 至於壓烙, 設機具然後乃施, 而此則因一時之令, 衆杖齊撞, 其若致命, 何異亂殺. 此後雖有命, 執法之臣, 爭勿擧行, 執法之臣, 若有劫於其命, 勉承者, 耳目之官, 隨事糾劾, 事載於備考003
註 003 원문은 “局”이나『英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 亦於金吾, 大書付諸. 噫, 彼唐宗, 漢唐中主, 而聞一善004
註 004 원문은 “事”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 則不惜數百005
註 005 원문은 “日”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之金與數百之匹, 況錫馬乎. 此非比他之計, 有償然後, 可表其直, 行副司直最中特賜熟馬一匹殿庭, 使國人知予意焉.”

註 001
원문은 “或”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請”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3
원문은 “局”이나『英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4
원문은 “事”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5
원문은 “日”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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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原從減等[英祖 27年(1751)]
▷ 원종공신의 감등
英宗二十七001
註 001 원문은 “四十七”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年, 傳曰, “名係原從, 凡照律減等, 例也, 而今聞於秋曹, 無減等之事, 其涉非. 此後一從金吾例減事, 分付.”

註 001
원문은 “四十七”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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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設申聞鼓[英祖 47年(1771)]
▷ 신문고의 설치
英宗四十七年, 傳曰, “噫, 古有立誹謗之木, 設敢諫之鼓, 豈不美也. 而予則曰, 此等世界, 不可論者, 其於登聞一事, 心有所不然者, 而古則爲民祈雨, 減饍撤樂之時, 更點, 皆以大金·小金代焉, 以其聲駭然, 昔年禁焉. 差備鳴金聲, 頗不美, 以此故甚至於殿庭鳴金瓦001
註 001 원문은 “凡”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於捧上言, 自有界限, 而近者濫莫甚焉, 若不嚴禁, 末弊勝言, 豈特002
註 002 원문은 “時”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此也.003
註 003 처음부터 여기까지의 내용은『秋官志』에 없다.닫기
欲法堯舜, 當法祖宗, 設申聞鼓, 以通下情, 寶鑑昭載. 以金代鼓, 莫知創設於何時, 而依004
註 004 원문은 “例”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古例, 定法然後, 其濫可禁. 旣聞入侍大臣, 今005
註 005 원문은 “命”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後依國初古例, 設申聞鼓, 而昌德進善門, 此闕建明門, 皆設於南. 若是設舊法之後, 勿論差備門街道, 鳴006
註 006 원문은 “明”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金者, 非特勿施, 決杖一百, 雖關四件事, 此亂民也, 皆決杖. 非關於四件事者, 豈特決杖而止, 皆湖沿充軍, 使無識小民知堂階之尊. 雖申聞於鼓者, 下該曹後, 若非四件事, 刑推遠配勿施事, 分付, 以示予尊舊法·通下情, 刑期無刑之意, 以此眞諺, 昭諭遐方小民, 俾無犯禁之弊. 自今日特設, 而依試射時設鼓, 前後面皆書申聞鼓三字, 使愚夫愚婦咸知. 今朔爲限, 未及聞, 而或有鳴金者, 無異令前, 依攔入例, 勿007
註 007 『承政院日記』: “勿”⇒“只勿”.닫기
施事, 分付該曹008
註 008 『承政院日記』는: “該曹”⇒“騎曹”.닫기
.”

傳曰, “今番設申聞鼓, 一則體國初, 一則杜末弊, 若此之後, 其所雜亂, 自可禁. 而靜而思之, 旣設申聞鼓, 其雖例刑, 刑推, 此必國初初無者, 訊雖輕重, 非設鼓之意. 此後若有鳴鼓者, 該曹以某人鳴申聞鼓, 下該曹推問爲啓, 下該曹後, 勿論該府該曹, 除前之例刑, 非四件事, 勿啓, 供辭直爲草記, 依定式勘律, 非伸冤而亂鳴者, 直付該曹, 亦依定式, 嚴刑充軍事, 分付.”

註 001
원문은 “凡”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時”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3
처음부터 여기까지의 내용은『秋官志』에 없다.
註 004
원문은 “例”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5
원문은 “命”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6
원문은 “明”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7
『承政院日記』: “勿”⇒“只勿”.
註 008
『承政院日記』는: “該曹”⇒“騎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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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同罪未放抄啓放[英祖 49年(1773)]
▷ 동죄 미석방자의 초계·석방
英宗四十九年, 傳曰, “放未放中, 有可放者, 持奏之命, 意蓋欽恤. 此後皆依此例擧行. 諸道道臣, 意各不同, 有放有未放者, 此則非今所奏, 予何知之. 不均特甚, 故旣命皆放. 此後皆依此例, 諸道狀聞皆到後, 若有此等者, 抄奏以放, 俾無不均之歎事, 永爲定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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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流罪只計程道[英祖 49年(1773)]
▷ 유형의 거리 계산
英宗四十九年, 吳璹, 杖一百流三千里勘律, 傳曰, “曾聞我國無三千里地, 回程而計云. 故今日令入侍次堂問於律官, 前則果然, 因下敎不計里數, 只極邊云. 噫, 作法於涼, 其弊也貪, 況法文乎. 噫, 白首暮年, 豈可以無於法之例施行乎. 自今以後, 依舊例只計程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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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禁侵民[英祖 50年(1774)]
▷ 백성 침학 금지
英宗五十年, 傳曰, “今聞湖南道臣査狀, 宋廉孫雖非逃躱, 不捉, 果然. 其子登聞, 其雖爲父, 可謂欺君. 此等鄕曲恃勢之子, 焉用近侍, 特宣薦. 若聞本事, 似由等閒001
註 001 『承政院日記』: “閒”⇒“閑”.닫기
, 而初無廉孫此擧, 則焉有是事. 予則曰, 問其本, 卽廉孫也, 此何異於以刃刺人. 況其子爲宣傳, 恃勢武斷, 氣高心恣, 若是侵民, 勢所固然. 不聞則已, 旣聞之後, 若不嚴懲, 無辜鄕民, 曷勝言哉. 宋廉孫, 珍島限己身定配, 使哀我小民, 少令息肩. 等閑初知誣訴, 由於廉孫滾迫, 而不問多少旣諭, 何異於廉孫. 雖然, 本非元犯, 似有參酌, 除尋常, 嚴刑一次後, 鐵原府定配, 以謝002
註 002 원문은 “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冤魂, 其他干連諸囚, 一竝以放事, 分付. 噫, 勿論京鄕, 爲士夫之名者, 此等之擧, 心常痛駭. 此後雖非殺人, 此等作弊者, 京則該曹, 外方本官, 隨聞嚴刑一次, 以示予暮年爲民之意. 噫, 渠脚若遺體, 聞此敎, 其若放恣, 此可謂人面獸心者, 不齒士類事, 亦爲定式.”

註 001
『承政院日記』: “閒”⇒“閑”.
註 002
원문은 “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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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赦典輕囚先放[英祖 51年(1775)]
▷ 사면령과 경죄수의 우선석방
英宗五十一年, 傳曰, “昨日大覺, 凡赦文皆曰, ‘已發覺·未發覺, 已決正·未決正, 咸宥之, 在官者, 各加一資’, 此三百年古例也. 而昨日靜思, 已發覺·已決正, 雖然, 未發覺本事, 無其何除001
註 001 원문은 “甚”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 此不過因文字對擧而然, 此後凡赦文時, 必曰‘勿論覺與未·已決正002
註 002 원문 및『承政院日記』는 “未”이나 문맥상 수정하였다.닫기
, 以003
註 003 원문은 “已”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咸宥’, 更撰敎文. 大抵京中, 雖有時囚, 特放之擧. 嗚呼, 外方只有放未放之聞. 此後赦文到後, 於輕囚, 勿踰004
註 004 원문은 “論”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其日, 卽放後, 啓聞中輕囚, 當日旋放之意, 啓聞事, 定式.”

註 001
원문은 “甚”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 및『承政院日記』는 “未”이나 문맥상 수정하였다.
註 003
원문은 “已”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4
원문은 “論”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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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刑具釐正綸音[正祖 2年(1778)]001
註 001 이 수교는『御定欽恤典則』으로 별도로 반포되었다(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經古365-J459e).닫기
▷ 형구를 바로잡는 윤음
今上二002
註 002 원문은 “元”이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年, 綸音曰, 予嘗觀諸宋時故事, 藝祖卽一中主, 慮其獄囚之瘐死, 開國之初, 命諸州長吏, 恤繫囚. 又以暑003
註 003 원문은 “署”이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盛詔獄吏, 五日一檢視, 灑004
註 004 원문은 “灑”가 없으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掃獄戶, 洗滌杻械, 貧者給食, 病者給藥, 小罪卽時決遣, 自是歲005
註 005 원문은 “歲”가 없으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以爲常. 寡人以爲, 趙宋累百年基業之綿遠者, 未必不基於斯矣. 況我烈祖欽恤之盛德, 卽我家傳授心法. 而矧予小子叨承丕緖, 敢不式克欽承, 對揚休烈之萬一也哉. 凡係恤囚之政, 固當隨處惕若, 而今當暑月, 又値三伏. 死囚之滯獄者, 累被拷掠之餘, 繫006
註 006 원문은 “係”이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之枷而鎖以杻, 眞所謂蓬頭鬼形, 與鳥獸無異者也. 噫, 當刑而不刑, 當殺而輕007
註 007 『御定欽恤典則』: “輕”⇒“徑”.닫기
放, 適足爲啓僥倖之門, 增罪戾之道, 殊非刑期無刑之義, 初不可擬論, 而其於審恤之政, 勿而大罪·小罪而區而別之, 一倣宋朝之故事, 擧而行之. 抑或爲欽之一道, 咨爾京外有司之臣, 其宜惕念者. 至若刑具, 制各有度. 笞杖之長廣圓徑, 枷杻之尺寸斤兩, 視罪深淺, 而異其制焉, 卽是不易之關和也. 近聞京外決獄之地, 率多不遵法制之歎. 以己之私, 而法亦隨而低昂, 不免爲官長飾怒之具, 可勝寒心. 噫, 法者, 天下之平也. 雖以人主操其柄, 而御其權, 猶且不敢一毫偏私干於其間, 況乎命吏者. 可倂知委京外, 恤囚斷獄之際, 體予申飭之敎, 恪勤遵行. 予聞, 化自近出, 政由內始. 京師之獄, 如彼其亂雜, 則外邑奚論. 刑房承旨馳往法府法曹, 取008
註 008 원문은 “敢”이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其笞杖枷杻之不如法式者, 一倂收聚, 照法準視, 條列以聞. 外邑亦當鱗次差遣御史, 抽栍憑檢, 如其犯者, 隨現重繩, 斷不饒貸. 諸道方伯及居留之臣, 先爲發送褊裨, 逐邑摘奸, 劃卽釐正, 俾無從後現發之事. 已前之違越格式者, 非止一二年之弊009
註 009 『御定欽恤典則』: “弊”⇒“廢”.닫기
, 則諸道査閱之時, 雖有現發者, 除非大不法之刑杖外, 屬之令前, 姑勿上聞, 只令卽速革除事, 一體知委.”

註 001
이 수교는『御定欽恤典則』으로 별도로 반포되었다(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經古365-J459e).
註 002
원문은 “元”이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3
원문은 “署”이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4
원문은 “灑”가 없으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5
원문은 “歲”가 없으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6
원문은 “係”이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7
『御定欽恤典則』: “輕”⇒“徑”.
註 008
원문은 “敢”이나『御定欽恤典則』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9
『御定欽恤典則』: “弊”⇒“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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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禁掘檢[正祖 元年(1777)]
▷ 굴검의 금지
今上元年, 傳曰, “昔我肅祖之敎, 有曰, ‘殺獄之最緊最重者, 莫如檢覆. 間有外方守令, 任意增減, 獄事遷就, 至有數十年不決而瘦死獄中者. 自今以往, 該官必親自開檢, 一從『無冤錄』, 毋或難明於未盡之患.’ 亦惟我寧考之敎, 有曰, ‘檢驗雖不實, 詞證俱備, 則不當追檢. 況已埋者乎. 周文其猶掩骸, 今則至於白骨檢驗, 予則曰, 當之者, 無異再被殺人, 或有不償命001
註 001 원문은 “命”이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者, 殘忍莫甚. 此後殺人而匿埋者, 依例檢驗後, 自官埋置, 其他已埋瘞者, 勿檢.’ 大哉, 聖人之言也. 重民命·恤刑獄之意, 藹然於辭敎之外也.”
傳曰, “先王斯有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斯其非歟. 予於是三覆百回, 不任莊誦激仰也. 向於賓對, 相臣之奏以爲, ‘自有先朝掘檢之禁令, 京外不敢開檢按驗, 不無幽鬱之慮.’ 予於其時, 只知肅朝之敎, 未詳寧考之敎, 故意以爲然, 詢于廟堂爰及三司, 至又有重臣欲許掘檢, 則今日以前, 當屬令前002
註 002 원문은 “前”이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之對矣. 繼又玉堂, 箚請掘檢, 予意亦以003
註 003 원문은 “以”가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爲然, 擬欲定制而未果者, 出於慮遠之意也. 況當閔旱之日, 其所審恤之道, 尤宜靡不用極. 取見先朝受敎, 則寧考之聖意, 亦只是肅朝之聖意, 而非爲禁掘之敎也. 向者相臣重臣之奏, 與夫玉堂之箚, 亶亦不外是也. 近年京外之不得掘檢者, 特以掌讞之官, 不能詳悉, 欲略於特敎之致. 大抵『無冤錄』掘檢之法, 欲防私和匿埋之弊, 則先朝受敎中, ‘殺人而匿埋者, 依例檢驗’之敎, 豈非肅朝受敎中, 一從『無冤錄』之敎也歟. 今有議者, 或以下句中‘其他已瘞者, 勿檢’之敎爲朝禁, 而此則大不然者, 此則卽指白骨檢驗之謂也. 今則別無申定令甲之事, 一依兩朝受敎, 遵而行之. 至於久遠之掘, 白骨之檢, 藉此申明之日, 爭起互訟, 若有紛競之端, 甚非先王欽恤之本意也. 今日以前已瘞者, 便屬令前, 切勿輕易擧論, 此後又或有年數已久, 可以掘檢者, 亦勿輕自開檢, 必也啓聞後爲之事, 定式施行, 知委京外.”

註 001
원문은 “命”이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2
원문은 “前”이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3
원문은 “以”가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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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理獄綸音[正祖 2年(1778)]
▷ 옥사를 다스리는 윤음
今上二年, 諭刑曹曰, “理獄, 莫難於讞獄, 亦莫難於001
註 001 원문은 “於”가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折獄, 故等是死囚, 而有斬與絞之別, 又有待時與不待時之分. 蓋欲於讞獄之始, 方彼比此, 或直斷, 或旁照, 俾無錙銖之或差於折獄之後也.『書』曰, ‘惟輕非輕, 有倫有要’, 不其然歟. 自唐世, 斷死刑也, 獄具而錄奏, 臨決而詳覆. 及其行刑之日, 天子齋居, 食素不擧樂, 示民以哀矜惻怛之意也. 我朝用是制, 每歲季冬斷死刑, 先三月詳覆, 覆必三焉. 自政府署事之規罷, 政歸法曹, 詳覆之法, 但行於待時之囚, 不行於不待時之囚, 是豈立法之本意也哉. 雖就目下事言之, 有不待時行刑之囚, 而謂無詳覆之例, 致有擬002
註 002 원문은 “依”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律不審, 莫能糾正之弊, 可謂疎漏之甚者. 凡大逆·不道及罪犯綱常之類, 大臣莅鞫, 三司按獄, 猶有詳覆之意. 至於不待時之囚, 大臣·三司不得閱實. 其事但以一律官之見, 攛那律文, 構案而上于獄官. 獄官曾不索思, 涉筆點位, 署惟勤焉, 何其愼於待時之囚, 而忽於不待時之囚也. 今後須遵舊制, 雖非待時之囚, 自卿曹議讞, 報議政府, 議政府更加詳覆, 始許登聞, 則讞獄之體, 不期重而自重, 折獄之道, 不期愼而自愼, 咨爾卿曹, 照此遵行.”

註 001
원문은 “於”가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2
원문은 “依”이나『秋官志』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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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欽恤綸音[正祖 2年(1778)]
▷ 흠휼윤음
今上二年, 綸音曰, “予卽祚元歲丁酉夏六月, 命有司臣編『欽恤典則』, 八閱月書始成. 粵, 翌年正月, 頒諸中外, 又命館閣臣, 著爲跋以傳永久. 嗚呼, 古者, ‘正月之吉001
註 001 원문은 “吉”이 없으나『周禮』·『御定欽恤典則』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 司寇布刑, 乃懸刑象之法于象魏, 使萬民觀.’002
註 002 『周禮』 「秋官」 [大司寇].닫기
夫陽春布德, 生意藹然. 王者體天行政, 可布德, 不可布刑也. 經曰, ‘監于玆祥刑.’003
註 003 『書經』 「周書」 [呂刑].닫기
刑而爲詳, 則布刑於布德之辰, 可以見聖人之心也. 蓋刑者, 輔治之具也. 使民而遠罪, 以有是也, 使民而遷善, 亦有是也, 欲其不干于是也. 如其干也, 而又底愼於適輕適重之分, 惟辟非辟, 惟宥匪宥, 欽哉. 期于無刑, 豈非祥歟. 予爲是明于刑之中, 內而官府, 外而州縣, 職之高下, 用有其等, 罪之大小, 律獲其平. 惟齊匪齊, 有倫有要, 肆迺彙成『典則』, 復爲圖爲尺度, 可開卷暸如也. 玆皆先王之舊制, 而寡人特一之而已也. 凡我掌法之官, 以寡人之心爲心, 受王嘉師, 咸中有慶, 則庶不負先王欽恤之意夫004
註 004 『秋官志』: “夫”⇒“矣”.닫기
.”

註 001
원문은 “吉”이 없으나『周禮』·『御定欽恤典則』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2
『周禮』 「秋官」 [大司寇].
註 003
『書經』 「周書」 [呂刑].
註 004
『秋官志』: “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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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禁宮女外游[正祖 2年(1778)]
▷ 궁녀의 외출을 금함
今上二年, 傳曰, “政自宮中始焉. 日前臺臣請禁酣歌也, 欲以此下敎而未果矣. 小民之會飮集讌, 或可諉之‘賁飾昇平’, 而至於玆事, 予自在儲時, 嘗所該痛者. 大抵名曰宮女而挾妓張樂, 多率掖隷宮奴, 稱以花柳, 稱以船游, 絡繹道路, 曾不顧忌, 甚至有奪入宰相之江亭郊野之事, 而此外鄙褻之事, 所可道也, 言亦媿001
註 001 『承政院日記』: “媿”⇒“醜”.닫기
也. 苟有一分國法, 豈是乎.002
註 002 『承政院日記』: “豈是乎”⇒“豈至是乎”.닫기
方當遏密之後, 外間之游衍, 日益雜還云, 則宮女之舊習, 亦安保其必無乎. 曾在八九年前, 宮女宴樂之事, 玉堂上箚論之, 況今欲革舊習之時乎. 爲先以此意分付, 自法司嚴飭各殿·各宮房宮女所管中官及宮任處. 如是設禁之後, 若以此等之事, 復踵前習者, 則雖一事半事之近似者, 毋論職高尙宮侍女, 隨現當遠地定配, 亦令自出禁諸法司, 另加廉察, 現捉者, 卽其時拘囚, 定配所押送後, 草記事, 分付, 作爲定式, 以革陋俗, 以淸內庭.”

註 001
『承政院日記』: “媿”⇒“醜”.
註 002
『承政院日記』: “豈是乎”⇒“豈至是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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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革備局放未放啓[正祖 2年(1778)]
▷ 비변사의 석방·미석방 보고 폐지
今上二年, 備忘001
註 001 원문은 “妄”이나 문맥상 수정하였다.닫기
記, “諸道之放未放啓本, 每於禁府·刑曹覆啓後, 又自備局回啓, 作爲恒典, 極可謂不成體段者也. 凡係大小刑配, 大臣無不與知, 則胡獨於大臣擧條, 而本司關文發配者, 屬之備局罪人, 自備局稟處其可放與否乎. 然則兵曹充軍罪人, 兵曹何不覆啓乎. 苟如是, 禁府·刑曹所管罪人, 自本司一體回啓, 則猶勝分屬之駭怪也. 爲先自今, 革罷放未放啓本, 本司回啓之規, 自發配時, 分付禁府·刑曹中所掌衙門, 使之發關. 而令前已自本司發關者, 令該府·該曹中稟處. 此後依此定式施行. 噫, 此雖小事, 朝廷之不尊,002
註 002 『承政院日記』는 다음에 “官方之紊亂, 胡至”가 있다.닫기
於此甚乎.”

註 001
원문은 “妄”이나 문맥상 수정하였다.
註 002
『承政院日記』는 다음에 “官方之紊亂, 胡至”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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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五日錄啓[正祖 2年(1778)]
▷ 5일마다 죄수 기록
今上二年, 傳曰, “錄囚始於唐, 而備於宋, 皆五日一錄囚焉. 我朝十日一錄啓, 殊非001
註 001 원문은 “雖”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古制, 況十日之間, 雖有枉殺之囚, 幽冤安得以自達於殿階之上乎. 此後該曹五日一錄囚, 一依古制爲之事, 定式, 仍令載之受敎.”

註 001
원문은 “雖”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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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罪關倫常草記[正祖 3年(1779)]
▷ 강상관련죄의 초기 보고
今上三年, 傳曰, “聖人之政, 先敎而後刑, 不敎而刑, 是謂罔民. 大抵敎莫大於五敎, 五敎不敷, 厥咎誰執. 是以每聞法曹決係干綱常之罪, 未嘗不怵然而懼者, 所以懼五品之不遜也. 然旣曰不孝不悌, 則不可以未敷敎而不施典刑也. 故如律而許裁, 遇赦而不放. 雖以近日獄囚之錄啓觀之, 凡屬綱常之罪, 不但式月斯生, 幾乎鎭日001
註 001 원문은 “鎭日”이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登聞, 此尤予重增歉忸處, 而亦豈非攸司不深量之一端乎. 憲府則掌風憲之地也. 若有傷風憲之民, 則事宜詳聞, 其犯之大小, 罪之重輕, 十分審愼, 明白無疑, 然後移法曹決罪, 可也. 若有風聞途聽之說, 但任一己之私, 輕先勘律, 則名雖編配, 生前無宥還之路, 無罪者之呼冤, 足爲干和. 抑不在不率敎之徒, 未足爲懲礪之道, 繼自今該曹以此知悉, 罪關綱常, 雖死罪以下, 必也深閱究覈, 其情實明知, 斷無疑端, 然後草記發配, 以副予先敎後刑之意. 此等罪名, 三法司中, 獨於憲府相續逮囚, 豈其刑曹·京兆則不知, 而獨彼憲府詳知而然乎. 亦其怪訝, 今番被囚人, 盤覈以聞.”

註 001
원문은 “鎭日”이 없으나『秋官志』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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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罪人直招停刑[正祖 4年(1780)]
▷ 죄인의 자백과 형추정지
今上四年, 傳曰, “年前已有定式受敎, 鞠囚猶然, 況下於此之罪乎. 王府刑推, 每準一次, 雖於十餘度或五六度而直招, 若準一次, 則其勢將至直招後加刑之境, 殊乖審克之意. 此後雖有一次加刑之敎, 而未準次直招, 則停稟旨修啓001
註 001 『承政院日記』: “則停稟旨修啓”⇒“停刑公事, 直爲修啓”.닫기
事, 定式.”

註 001
『承政院日記』: “則停稟旨修啓”⇒“停刑公事, 直爲修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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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擊錚過三日轉稟[正祖 4年(1780)]
▷ 격쟁 후 3일내 승정원 보고
今上四年, 判付內, “滯囚已久, 與李德老供辭, 卽爲議處. 此後判堂如有故, 三日限內不得開坐, 該郞來告該房, 以爲轉稟事, 定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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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沒實緘答草記勿施[正祖 5年(1781)]
▷ 부실함답의 초기접수 금지
今上五年, 傳曰, “此緘答, 無異金海柱緘答, 方面體重, 姑不處分, 該曹之曲循捧入, 不可無警. 當該堂上推考, 此緘答還下送, 使之罔夜改修正上送. 如或遲滯, 難免重勘, 以此嚴飭. 此後緘答有沒實之弊, 該曹草記勿施, 更爲發緘取招, 定式施行, 憲府照此爲之事, 分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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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橫叛上典[正祖 6年(1782)]
▷ 상전을 배반함
今上六年, 傳曰, “編配頻001
註 001 『受敎定例』: “頻”⇒“類”.닫기
仍之時, 此等之類, 何必更配. 發配一款, 勿施. 大抵京外法官, 每於發配罪人, 欲002
註 002 원문은 “亦”이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諱本事, 則輒以‘橫叛’二字, 勒成發配. 此後勿論刑曹及外邑, 復以此四字, 移施於他罪, 有發配之弊, 致煩上聞, 則該曹堂上·諸道監司譴罷之典, 斷不可已. 如是嚴飭後, 律官尤焉敢聽令擧行. 萬一復踵前習, 所謂律官, 豈非亂法之民, 亦當刑配. 以此傳敎, 自本曹書付壁上, 惕念擧行, 亦卽枚擧措辭, 行會諸道. 果有橫叛之罪, 則必具犯罪委折, 及詳考橫叛上典姓名, 毫無差爽, 然後發配.”

註 001
『受敎定例』: “頻”⇒“類”.
註 002
원문은 “亦”이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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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登聞後發配[正祖 6年(1782)]
▷ 강상관련 죄수는 보고 후 발배
今上六年, 南部李召史上言內, “矣身年八十二, 只有一子充金, 醉中失禮於閭里, 以不敬老母, 爲人所訴, 定配富寧, 乞蒙放釋”云.
曹回啓, 判付內, “此等罪名, 易致爽實, 向有『受敎定式』, 必經登聞, 然後使之發配, 此漢果是令前發配乎. 相考文案, 草記.”

曹草記, “充金發配, 果在令前”云.
傳曰, “令久則弛. 此後此等罪名, 萬一不卽登聞, 該堂直捧, 削職傳旨事, 載之『政院故事』·本曹受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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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獄案修啓式[正祖 6年(1782)]
▷ 옥안 상주 법식
今上六年, 傳敎內, “諸道獄案, 道各異例, 或不書罪名, 或不問切隣與保授, 或初覆檢驗殊例, 或根因詳略不同, 此後指一定式.”
曹草記, “罪人啓本, 先錄罪名001
註 001 『受敎定例』: “罪人啓本先錄罪名”⇒“啓本先錄罪人罪名”.닫기
, 次錄檢狀, 又次錄應問各人招辭, 使諸道以此遵行.”
傳曰, “定式002
註 002 『受敎定例』는 “後”가 더 있다.닫기
實爲簡當, 依此分付.”

註 001
『受敎定例』: “罪人啓本先錄罪名”⇒“啓本先錄罪人罪名”.
註 002
『受敎定例』는 “後”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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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司卷·領籤移金吾[正祖 6年(1782)]
▷ 사권·영첨의 의금부 이송
今上六001
註 001 원문은 “二”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年, 傳曰, “司卷·領籤, 自是正職, 有令攸司科治之命, 則自本曹以移禁府處之之意, 依例草記後, 移禁府. 而閣監則姑無定式, 依飯監及司謁例, 直令該曹擧行, 若是曾經正職之人, 移禁府擧行事, 定式施行. 該房·該府·該曹, 依此知悉, 仍令本閣照此.”

註 001
원문은 “二”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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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猥濫呼籲人草記發配[正祖 6年(1782)]
▷ 버릇없는 호소자의 초기유배
今上六年, 傳曰, “向以猥濫呼訴事, 發配人, 竝放送. 此後此等之類,001
註 001 『承政院日記』는 “本曹懲治草記, 雖或蒙允”이 더 있다.닫기
必於發配時, 以擬某律, 配何地之意, 更爲草記, 待判下擧行, 仍令永爲定式.”

註 001
『承政院日記』는 “本曹懲治草記, 雖或蒙允”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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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未至配所一體付啓[正祖 6年(1782)]
▷ 배소 미도착자 모두 보고
今上六年, 傳曰, “赦文中, 雖有‘已至配所·未至配所, 咸宥除之’之001
註 001 원문은 “之”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句語, 近來啓本中, 未至配所之類, 未免漏, 却此殆發配之該道則諉以已發配, 不爲別具狀聞, 到配之諸道則果然未到配, 亦未同爲, 重罪之見漏, 雖無關係, 而輕罪或徒年之未蒙一視之澤, 誠極矜悶. 繼今以往, 宜有一番定式, 京外發配罪人, 計其日子及程道, 如未得抵配所官, 則自發配之處, 條列姓名·罪名, 附錄於放·未放文書下端, 以啓事, 一體行會, 令禁府·刑曹, 亦爲知悉, 照此爲之, 載之受敎, 永久遵行.”

註 001
원문은 “之”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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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錄啓冊式[正祖 7年(1783)]
▷ 죄수 보고서의 형식
今上七年, 傳曰, “今年春夏六朔所決獄案, 雖已過時, 使之作冊書入. 自昨年至丙申, 亦皆依此凡例書入事, 分付該曹·該府. 堂上躬自坐檢, 而郞官則分年抄編事, 一體分付.”
又傳曰, “庶獄庶愼, 帝王之令節, 而予則燭理未周, 每決一案, 輒不免顚錯. 以是之故, 日前筵中, 以今年決獄文書, 逐一條列陳聞之意, 面諭刑官, 而此不過一張休紙, 無以便於考閱. 凡官職遷除, 財001
註 001 원문은 “則”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用出入, 講製抄拔, 亦皆有案簿. 若値當朔, 各該官郞, 來請御覽案修正入啓. 況此刑獄決折, 大而關殺活, 小而係苦樂, 理宜十分審愼, 豈可以已決而更不屢致意也. 今後禁府·刑曹所決獄案, 無巨無細, 抄錄肯綮, 待月終錄〈啓〉002
註 002 원문은 “啓” 1자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下後, 每年季朔都謄一冊以啓, 夏秋冬季朔, 不必別作冊子, 春季朔冊子, 請出添書以入, 一依吏·兵曹之大政攷·戶曹之財用簿·禮曹之講製案例爲之事, 永爲定式.”

註 001
원문은 “則”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啓” 1자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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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雇工定制[正祖 7年(1783)]
▷ 고공에 관한 정의
今上七年, 判付內, “罪人鄭大仁段, 實因狼藉, 證援分明, 故殺人情節, 斷然無疑是去乙, 其矣發明, 全不成說是置, 若其手勢之至兇, 觀於渠之從兄大石在畓001
註 001 원문은 “沓”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庫時言, 尤難自掩. 蓋大仁, 圖文券, 欲自處以殺奴, 稱小杖而欲自免於杵打, 究厥情狀, 萬萬痛惡兺不喩, 初檢招則曰, ‘白萬不知, 而道伊沙里, 自稱偸出’云002
註 002 원문은 “示”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爾是如可, 參覈招則又以爲, ‘道伊沙里前期逃走, 白萬自服003
註 003 원문은 “服”이 없으나『審理錄』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持去’云, 前後矛盾004
註 004 원문은 “遁”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 而粧撰窘遁之狀, 惟此可知. 雖曰欲推錢物, 而不施當施之刑, 乃敢毒打至此, 則何可諉之以毆打折傷. 而且以雇工之法言之, 皇朝·我國, 宜無異同兺除良, 本道之狀·該曹之啓皆以爲, ‘皇朝之法, 重於我國, 旣斷以絞罪是隱則, 以此以彼, 斷無參恕之道. 若不施法, 此後爲雇工者, 其將日日就死.’ 此則監營題辭, 可謂實際語, 而跋辭中謂以‘愚悍常漢, 信手毆打, 付之惟輕之典’者, 此則可謂失之太寬. 有難輕易酌決是乃, 獄案亦多疎漏處. 杵打之說, 發於大石而005
註 005 원문은 “之”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辭連006
註 006 원문은 “緣”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卽柳召史也. 杖打之狀, 見者老味, 而參證又是老味也是遣, 又於具召史之招以爲, ‘杵臼竹打殺之說, 聞於鄭斗三家’是如爲有則, 覆檢時, 此數端, 專不擧論者, 未知何故是隱喩, 其在獄體, 宜問不問之失, 自有其罪是如乎, 當該檢官, 從重推考爲遣. 且大仁之故殺與否, 固不在於杖與杵, 而詞案則又不容如是其闊略是遣. 覆檢狀中, 屍親招辭, 亦不載錄, 豈其原文案節略謄啓之故, 刪却此一段而然是隱喩, 此亦可訝. 以此更令道臣親執詳査, 然後稟處爲旀, 至於裁定金石之典云者, 不可無一定之制, 自本曹議大臣稟處事”, 判下.

據其時判書臣徐, 就議大臣爲白乎則, 領議政徐以爲, “今因007
註 007 원문은 “囚”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湖南道臣啓聞, 有雇工定制收議之命矣. 我國雇工之規, 與皇朝有異, 皇朝則立有文券, 議有年限, 然後始謂之雇工, 而我國則有文券·定年限者, 不謂之雇工, 而直謂之奴婢, 所謂雇工稱名者, 不過村店間乍去乍來一時留接之類也. 此卽皇朝律例中‘短雇日月, 受値不多者, 依凡人論’者也. 今若以俗名雇工, 襲用皇朝立文券·議年限之例, 則不亦舛乎. 臣意, 一依皇朝定制, 今後京外倩工之人, 受値十兩以上, 議限五年以上, 而立文券者, 許入帳籍, 以雇工論, 此外不受値·不立券·不入帳籍而一二年出入使喚者, 依凡人論, 恐合事宜, 伏惟上裁.”云.
右議政李以爲, “今以我國雇工奴與『大明律』雇工奴同異與否, 至有使該曹議大臣之命矣. 臣謹按『附例大明律』, 有曰, ‘萬曆十二年正008
註 008 원문은 “五”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月題奉欽法, 今後官民之家, 凡倩工作之人, 立有文券, 議有年限者, 以雇工論. 止是短雇日月, 受値不多者, 依凡〈人〉009
註 009 원문은 “人”이 없으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論.010
註 010 『大明律附例』 「刑律」 〈鬪毆〉 [奴婢毆家長 萬曆十六年正月新題例] 참조.닫기
’ 然則雇工云者, 與價·立文券·年久使喚者也. 我國所謂雇工, 不過少則三四朔·多則一二年, 而元無受値文券之事, 不可與皇朝雇工比而同之. 以此論之, 我國則不當以雇工名色, 擬之於無文券·不受價之人矣. 自今以後, 一依皇朝定制, 受價十兩以上·議限五年以上·立券入籍者, 以雇工奴論, 乍去乍來無値無券者, 依凡人論, 恐合事宜, 伏惟上裁”云.
領中樞府事金, 病不收議.
故領敦寧府事李以爲, “卽伏見刑曹啓目判付下者, 以雇工定制, 有受議之命矣. 我國雇工, 旣與皇朝定制有異, 雖無文券·不入籍, 而亦謂之雇工. 若以一時留接之類, 爰用皇朝雇工律例, 則有關後弊, 必以受値·成券者, 爲雇工定制, 其外則以凡人論, 恐合事宜, 伏惟上裁”云.
判中樞府事鄭以爲, “『續大典』推斷條, 雇工之於家長, 亦三省推鞠, 其法意, 固未嘗不嚴, 可知. 然而我國雇工, 只是使役間衣食, 而朝聚暮散之類, 非如『大明律』所謂有文券·有限年之比. 今當定制, 則一依『大明律』本意, 定界限, 恐合事宜, 惟在博詢而處之”云.

癸卯七月十四日, 備局啓曰, “以雇工定制事草記, 批旨, 有‘至如雇主·雇工犯科, 罪011
註 011 원문은 “死”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在雇工則視他加一等, 罪012
註 012 원문은 “死”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在雇主則視他減一等之說. 及凡於論勘, 家長之於雇工, 加於奴婢一等, 雇工之於013
註 013 원문은 “於”가 없으나『審理錄』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家長, 減於奴婢一等云云. 兩說俱有意見, 而曰加曰減, 未知議者本意在於合施何律. 自廟堂更加商確, 指一草記, 可也’之命下矣. 雇工殺害雇主, 本有當律, 無容更議. 雇主殺害雇工之律, 一說則曰比殺奴婢, 宜加一等, 一說則曰比平人相殺, 宜減一等. 以此兩說, 參考律文, 比殺奴婢加一等, 則律爲杖七十徒一年半, 此則失之太寬, 比平人相殺減一等, 則律014
註 014 원문은 “律”이 없으나『審理錄』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爲杖一百流三千里, 恐合似宜, 伏惟上裁之意, 敢啓.”
傳曰, “依議施行.”

註 001
원문은 “沓”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示”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3
원문은 “服”이 없으나『審理錄』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4
원문은 “遁”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5
원문은 “之”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6
원문은 “緣”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7
원문은 “囚”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8
원문은 “五”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9
원문은 “人”이 없으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10
『大明律附例』 「刑律」 〈鬪毆〉 [奴婢毆家長 萬曆十六年正月新題例] 참조.
註 011
원문은 “死”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12
원문은 “死”이나『審理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13
원문은 “於”가 없으나『審理錄』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14
원문은 “律”이 없으나『審理錄』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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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査啓定式[正祖 7年(1783)]
▷ 조사보고서의 정식
今上七年, 黃海監司沈啓本, 傳曰, “特敎行査, 他道則方伯親執爲之, 獨於本道, 必以定査官001
註 001 『承政院日記』는 “爲之之意, 登聞”이 더 있다.닫기
, 豈其道例, 各有不同而然乎. 此等處, 宜有均一之制. 卿曹相考各道文案, 定式行會.”
曹草記, “松禾獄事判付, 査官以剛明人差定, 會査本縣, 故使査官査報者, 似由於此. 此後, 凡係一律重囚之因判下行査者, 道臣親執按査啓聞事, 定式行會諸道, 何如?”
傳曰, “允.”

註 001
『承政院日記』는 “爲之之意, 登聞”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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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文蔭武士子徒配勿檢[正祖 7年(1783)]
▷ 추국죄수 이외의 문음무관·사족의 검험 금지
今上七年, 傳曰, “非鞫囚, 則凡編配時囚中, 或物故之人, 雖係贓汚者, 勿論文蔭武, 除檢驗. 以士爲名徒年者, 竝依此勿檢事, 令該府·該曹定式施行, 雖應坐定配者, 名係宗籍者, 效刑于甸之意, 勿檢事, 一體分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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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婢夫定律[正祖 17年(1793)]
▷ 계집종의 남편에 적용율
今上十七001
註 001 원문은 “今上七”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年, 上曰, “婢夫之於妻上典, 名分何如. 特以殺之有償命, 爲施惡蔑紀之端, 而爲其妻上典者, 未免彌縫爲事, 以至欲治不治. 兩班如此, 中人何論, 中人如此, 市井何論. 如此不已, 則將使等威日紊, 誠非細慮. 每欲一番定式, 而未果矣. 今以刑曹稟決之殺獄觀之, 所謂婢夫所爲002
註 002 원문은 “所謂”,『受敎定例』는 “可爲”,『承政院日記』는 “所爲”인데, 문맥상『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 誅之猶輕, 豈可議到於成獄乎. 若杜凌犯之漸, 宜先潤色於金石之典, 然後有奴婢之上典, 雖甚殘微無勢力, 可003
註 003 원문은 “不”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得以行號令, 而婢夫之惡習, 可以除矣. 有國所重, 莫大於風敎. 夫爲妻綱, 上典爲奴婢之綱, 淫女之鶉奔也, 除非倂殺奸夫女於奸所, 謂004
註 004 『正祖實錄』·『受敎定例』: “謂”⇒“則”.닫기
例皆成獄償命, 而先朝特軫風敎之日渝, 諸非挽裳對飯而現捉於本夫之類, 皆許惟輕之典. 妻上典之於婢之夫, 不敢下手, 下手而邂逅死, 則必償命, 此何異於奴婢之犯上典乎. 其視悖漢之與淫女一番挽裳, 一番對飯, 其輕重深淺, 尤有間焉. 然則妻上典之治罪犯分之婢夫, 而婢夫致斃者, 決不可勿問事實一依償命. 大臣及曾經刑官諸臣, 各陳所見, 可也.”
領議政洪曰, “殺獄體重, 固當審愼, 則以臣昏耗之神識, 何敢剖柝仰對. 而近來名分之紊亂, 誠一痼弊. 至於婢夫之凌辱妻上典, 不但疲殘士夫家, 比比有之, 閭巷賤流, 尤爲特甚. 若或有意外殺死之獄, 不問是非, 一例訊推, 無所區別, 則其爲虧傷紀綱, 所關非細. 爲法官者, 當觀用意與邂逅, 如其用意, 則固不可枉法闊狹, 而若係邂逅, 則初不直斷以殺獄, 別具意見, 仰請稟裁後決處, 恐合於嚴法律·扶風敎之一端矣.”
行司直鄭民始曰, “婢夫之居接廊底, 視同奴僕. 若有凌犯之事, 則未及告官, 略加懲治, 不是異事, 而因此邂逅者, 亦與凡民同律, 果爲太重. 以此之故, 雖士夫之家, 於悍惡之婢夫, 不敢誰何. 至於閭巷之人, 殆不能支堪, 傷風敗俗, 莫甚於此. 若其罪不至死, 而用意戕害者, 固當爲如律, 而其他笞杖之屬, 若許以參量自斷, 以假其威制之權, 而或致邂逅, 從以闊狹, 則彼亦必知畏而自戢, 其有補於風化, 誠不少矣.”
行司直李文源曰, “殺獄雖重, 所謂婢夫, 旣有如奴之名, 固不敢橫恣. 而近來風習漸壞, 勿論京鄕, 士族之疲殘者, 閭巷之無勢者, 爲其使婢子·待婢夫, 無異己僕, 不障內外, 撫馴無嚴, 不是異事, 一有呵責, 不有分義, 肆發惡言. 爲其主者, 至或乘憤手毆, 邂逅致斃者, 則輒以償命告官. 以是之故, 箠責非所可論, 而不敢加一言, 反以出給其婢, 以溫言順辭, 誘以出送, 此乃大關風化. 蓋雖在己僕, 不告官擅殺, 自有其律, 如或用意戕殺婢夫, 固當參考情法, 而不然邂逅致斃, 以償命告官者, 參量輕重, 合有稱停. 然後頑惡婢夫之徒, 庶有懲礪之事, 疲殘無勢之輩, 似有御婢僕之道矣.”
戶曹判書沈頤之曰, “各道徒流案凌辱妻上典者, 十居其半, 因此而有傷風敗俗之歎. 朝家深軫此弊, 年前有特敎申飭之, 故法官亦不饒貸, 而此輩終不知戢, 冒犯者多. 今若定以笞杖幾何自斷之法, 而或有邂逅致命之事, 杖數之內則勿問, 故爲戕害, 情理絶悖者, 初檢後具由草記, 備陳獄情, 以待處分, 始爲成案, 法律無所撓屈, 風敎必有扶植矣.”
右參贊洪秀輔曰, “以婢夫凌辱妻上典, 其犯分傷風, 比諸尋常行路之辱罵士夫, 尤爲痛惡. 乘憤懲治, 容或無怪, 若以不幸致斃, 直爲償命, 則雖似過重, 然殺人之律, 三尺至嚴, 末流之弊, 不可不念. 戶判所奏, 定笞杖之數而先立界限, 酌情法之間而仰請處分云者, 誠爲得當矣.”
兵曹判書徐有防曰, “婢夫凌辱妻上典, 無論士夫家·閭巷, 誠爲莫大之痼弊. 間或有殺之獄, 而其用意故犯者, 固無奈何, 而如其因其凌辱, 略加懲治, 不幸有邂逅致命之擧, 則均用與凡人同律, 則大爲不可, 摠使之酌量自斷, 戶判之具由草記云者, 誠有所據, 惟在備詢而處之矣.”
吏曹判書金思穆曰, “近來婢夫之凌辱妻上典者, 種種有之, 事關風化, 宜有一定之規. 今此戶判所奏, 雖有獄情之邂逅, 或絶悖者, 具由草記, 以待處分, 使法律無所撓屈, 風敎有扶植云者, 恐似得宜矣.”
禮曹判書閔鍾顯曰, “法律雖重, 而事係風化, 則法亦有不可不闊狹處. 臣意, 則依戶判所奏, 凡有似此情犯, 爲獄官者, 酌量事理, 以爲稟裁之地, 恐好矣.”
開城留守李秉鼎曰, “婢夫之凌辱妻上典, 無論京鄕, 誠爲痼弊. 士夫孤寡之家, 閭巷寒微之人, 尤受其害, 大關風化. 而但區區愚淺之見, 三尺自來至嚴, 祛弊生弊, 亦不無慮. 況閭巷之人, 婢夫之中, 亦多儕類. 凡有獄案, 欽恤闊狹, 惟在上天之造化, 恐不必作爲定制矣.”
刑曹判書徐鼎修曰, “臣亦別無他見, 而所謂婢夫, 亦有許多般, 或有多年使役, 無異奴僕者, 或有一時依接, 便同路人者, 今若定爲一定規, 則似不無掣礙之端. 此後如有似此獄事, 而情犯之初無可疑者, 自當勿論, 若其不可不成獄者, 則議讞之臣, 據實陳聞, 以爲稟裁闊狹之地, 似好矣.”
上曰, “詢問之意, 豈徒然哉. 蓋欲嚴等威正名分, 兼寓生道殺人之意也. 今雖闊狹, 豈必以此爲弊. 若以假與治罪之權, 爲枉殺之慮云爾, 則此有大不然. 奴婢之於上典, 旣許殺闊, 其不告官之律, 不過決杖, 而未聞以此有枉殺之爲弊. 至於開城留守所奏中, 閭巷人婢夫, 亦多儕類云云, 尤未必爲然. 向所謂婢夫云者, 特指率接廊下如奴使喚之謂也. 誠如重臣之說, 則士夫之家畜人家婢僕, 見殺於本主者, 亦當不爲償命乎. 此則重臣之慮誠過矣. 今番詢問之擧, 積有酌量而爲者, 自今人家率接之婢夫, 向妻上典肆發惡言, 情理絶悖者, 妻上典治罪, 邂逅之致死者, 部官報于該曹, 依挽裳對飯律, 勿爲成獄, 情非005
註 005 『承政院日記』: “非”⇒“理”.닫기
絶悖, 治非006
註 006 원문은 “罪”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邂逅, 則獄具後, 草記稟決. 不當發告而發告者, 定007
註 007 『承政院日記』: “定”⇒“律”.닫기
反坐, 其他言語之不恭, 行事之犯分者, 不分輕重, 隨現告官, 嚴刑定配, 俾人家婢夫之輩, 知有妻上典之有處置之權事, 分付京外也.”

註 001
원문은 “今上七”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所謂”,『受敎定例』는 “可爲”,『承政院日記』는 “所爲”인데, 문맥상『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3
원문은 “不”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4
『正祖實錄』·『受敎定例』: “謂”⇒“則”.
註 005
『承政院日記』: “非”⇒“理”.
註 006
원문은 “罪”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7
『承政院日記』: “定”⇒“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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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非鞫囚勿檢[正祖 7年(1783)]
▷ 도배 중 사망 문음무관·사족의 검험 금지
今上七年, 傳曰, “非鞫囚, 則凡編配時囚中, 或物故之人, 雖係贓汚者, 勿論文蔭武, 除檢驗. 以士爲名徒年者, 竝依此勿檢事, 令該曹·該府定式施行, 雖應坐定配者, 名係宗籍者, 效刑于甸之意, 勿檢事, 一體分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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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京司檢驗依外邑例[正祖 8年(1784)]
▷ 중앙검험은 지방예에 의함
今上八年, 傳曰, “殺獄成案, 事體何等至嚴, 而京司規例, 反不如外邑. 初覆檢, 則狀辭旣甚疎漏, 推覈亦不以時, 甚至成獄文書, 無一字跋語, 雖以本曹事言001
註 001 원문은 “言”이 없으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之, 部府報來之後, 一番例推, 任他經過, 了無審閱之意, 前叨者襲謬, 後來者效尤, 一年002
註 002 원문은 “年”이 없으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二年, 出場無期. 如是之際, 安保無瘦死之冤乎. 觀於今番獄囚安宗玄之致斃, 而渠之罪款003
註 003 『承政院日記』: “款”⇒“疑”.닫기
有無, 姑舍是, 未必不爲干和之一端. 且考時囚錄啓, 昨年再昨年成獄之類, 迄未004
註 004 『承政院日記』·『正祖實錄』: “未”⇒“不”.닫기
完決, 京司爲表正之地, 而怠忽如許, 豈非朝廷之羞恥乎. 繼自今宜定劃一之規, 初覆檢狀結語及限內行檢等節, 一依外邑例爲之, 本曹完決, 亦無得延拖, 而坐起005
註 005 『正祖實錄』: “坐起”⇒“開坐”.닫기
時無端闕推, 則該判堂削職, 該房郞官先汰去, 出付該府, 以爲照法勘處之地. 此傳敎載之刑房故事, 該房承旨, 依此直捧傳旨, 亦令禁府刑曹, 載之受敎.”

註 001
원문은 “言”이 없으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2
원문은 “年”이 없으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3
『承政院日記』: “款”⇒“疑”.
註 004
『承政院日記』·『正祖實錄』: “未”⇒“不”.
註 005
『正祖實錄』: “坐起”⇒“開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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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奸獄狀聞[正祖 8年(1784)]
▷ 간음사건은 임금에게 보고할 것
今上八年, 判付內, “羅州牧殺獄罪人奴吹三獄事段, 傷損無餘地, 致命在當日, 吹三之爲元犯, 毫無起疑之端兺除良, 渠妻金女與致死人春城行淫之迹, 眞有是也. 此或爲參恕處, 而奸贓未捉於奸所, 證言未必是公言, 況於金女之供, 以接膝握手之事, 挽001
註 001 원문은 “脫”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裳對飯之狀, 一一發明, 言有條理. 且其行兇之跡, 極甚獰慘, 想像鬪鬨時光景, 怒拳憤踢之當下便斃, 不待詞案而如在目中, 以此以彼, 減死非所002
註 002 원문은 “所”가 없으나『受敎定例』 및『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可論. 而本曹覆啓中所003
註 003 원문은 “可”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論列, 亦不可謂無據, 況引受敎內句語附陳之, 則豈可膠004
註 004 원문은 “謬”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守常法, 不念闊狹之方乎. 吹三乙良, 嚴刑三次, 減死定配爲有矣, 待拷訊限日滿, 次次加刑, 待準次發配爲旀, 吹三妻金召史段, 寧冒行奸之惡名, 圖救渠夫之死罪, 而了無是意, 反欲作證, 情狀則痛駭, 倫理滅絶, 嚴刑一次, 以爲懲礪之地005
註 005 원문은 “地”가 없으나『受敎定例』 및『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事, 分付爲旀, 因今番獄案判付, 有申飭者. 先朝戊寅受敎, 以‘一房同食, 何異奸所’爲敎, 又於癸巳受敎, 以‘無異奸所, 有勿爲完決, 狀聞後擧行’爲敎, 仍命京外奉承傳遵行, 而近來諸道獄案, 此等獄事, 初無狀聞稟處之事, 自本曹別關行會諸道, 如此類, 無論已完決·未完決, 竝卽槪錄原文案狀聞事, 分付”爲良如敎.

註 001
원문은 “脫”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所”가 없으나『受敎定例』 및『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3
원문은 “可”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4
원문은 “謬”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5
원문은 “地”가 없으나『受敎定例』 및『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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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外邑決獄案修啓[正祖 8年(1784)]
▷ 지방 결옥안의 수정보고
今上八年, 傳曰, “京囚完決之後, 有本曹日次公事, 猶可常常披閱, 至於外囚, 一番錄啓, 更無001
註 001 원문은 “無”가 없으나 문맥상 보완하였다.닫기
參考之道, 殊非一視之意. 此後諸道錄啓死囚, 區別分編, 謄置冊子, 一件入啓, 一件曹上, 新錄啓之類, 當道冊子中, 次次添002
註 002 원문은 “流”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錄, 或有疏決者, 元冊字拔出事, 著爲定式. 入啓冊子, 請出修正, 一依決獄案例擧行事, 亦爲分付.”

註 001
원문은 “無”가 없으나 문맥상 보완하였다.
註 002
원문은 “流”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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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殺獄蔭郞擧行[正祖 9年(1785)]
▷ 음관인 낭관이 살인사건 담당
今上九年, 傳曰, “文郞久仕, 不若蔭郞, 蔭郞皆是來頭守掌之人, 似此訟理宜令慣熟. 此後殺獄該掌, 以蔭郞房任中, 永定擧行事, 分付該曹, 定式施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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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罪囚給由[正祖 10年(1786)]
▷ 죄수의 휴가
今上十年, 忠淸監司狀啓, “洪州牧囚推罪人海南縣船格孫福深, 遭其父喪給由, 過葬後使之還囚, 令該曹稟處事.”
傳曰, “依狀請施行, 回諭. 此後除非死囚及關係逆獄外, 依法典直爲給假, 以形止狀聞, 以此施行事, 令該曹分付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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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內侍訟卞[正祖 10年(1786)]
▷ 내시 관련 소송
今上十年, 傳曰, “因此有不可不提001
註 001 원문은 “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飭者. 內侍屬於內府, 凡有可訴可告之事, 先呈內府入啓轉聞, 仍待朝家處分. 今番事, 渠則來告, 該掌中官謂以無關於內府, 不卽提稟, 是何異於使之爲之. 該中官嚴處, 問于內府, 指名捧現告以入. 以此傳敎, 竝下廟堂, 令廟堂分付法司及五部, 若無內侍府轉啓文跡粘錄來告者, 雖大於此事, 切勿聽理, 直爲草記, 諸道一體知悉002
註 002 원문은 “知悉”이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

註 001
원문은 “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원문은 “知悉”이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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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配滿十人邑移配[正祖 10年(1786)]
▷ 10인 이상 죄수의 이배
今上十年, 因慶尙道尤甚邑定配罪人別單, 傳曰, “如機張·泗川·固城等邑編配之數, 各爲十餘人之多, 雖在常年, 殘邑之受困可悶. 此後諸道各邑, 自京外來配者, 數近十人, 自本道往復文移, 移配所事, 定式施行, 仍以此意, 知委諸道, 至於本道有徒流案, 必於發配時考閱擧行, 俾無重疊之弊事, 定式施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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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配享臣子孫世宥[正祖 11年(1787)]
▷ 종묘 배향신하 자손의 영구사면
今上十一年, 傳曰, “凡配食廟庭者, 稱功臣, 觀於五禮諸書, 可一按而知. 且其奇績偉業, 豈讓於紀常之人乎. 況世室位配享諸臣, 又許血食千秋. 此蓋錄勳功臣, 所無之殊典, 而彼獨世宥, 此勿論, 終涉欠事. 今因推緘照律, 始覺之, 旣覺宜有成式. 自今配享功臣子孫, 一從錄勳功臣子孫例, 用宥世之典, 載之法書001
註 001 『承政院日記』는 “照此”가 더 있다.닫기
遵行.”

註 001
『承政院日記』는 “照此”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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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禁正妻囚禁[正祖 12年(1788)]
▷ 정처의 구금 금지
今上十二年, 因刑曹都囚徒, 傳曰, “一人001
註 001 『承政院日記』: “一人”⇒“名以”.닫기
次知奴婢竝囚, 卽法外之事.002
註 002 『承政院日記』는 “卽法外之事”가 없다.닫기
加此一等, 親屬當捉囚, 又加此一等, 正妻當捉囚, 其流之弊, 將至於虧壞金石之典. 003
註 003 『承政院日記』는 “當該承旨從重推考 當該司謁捉來囚禁 待下敎杖贖放送 政院若此 則”이 더 있다.닫기
他各司可以反隅, 溯考年條, 詳査草記, 可也.”
曹草記, “正妻囚禁事, 丁亥受敎以後, 初無犯禁之事”云.
傳曰, “法禁稍久則必弛, 申申修明, 乃爲悠久之道. 況先朝受敎, 所重何如, 載在續典, 信如金石. 正妻雖無囚禁之事云, 而親屬囚禁, 次知其不能區別, 今欲一一査實, 徒近紛拏, 雖付之昧爽以前, 此後因其夫替囚正妻, 因其子與弟替囚父與兄, 嚴禁一款, 更加修明, 判書金鍾秀, 謹將傳敎揭板于堂上廳事.004
註 004 『承政院日記』: “判書金鍾秀 謹將傳敎揭板于堂上廳事”⇒“犯者 官員以制書有違律論 而獄官執告政院 掩置不告者論罪等事 一依續典受敎遵行 仍以此批旨 令廟堂申飭 各司 可也”.닫기


005
註 005 10일의 기사는 11일에 반복되며,『特敎定式』은 이를 요약하였다.닫기
註 001
『承政院日記』: “一人”⇒“名以”.
註 002
『承政院日記』는 “卽法外之事”가 없다.
註 003
『承政院日記』는 “當該承旨從重推考 當該司謁捉來囚禁 待下敎杖贖放送 政院若此 則”이 더 있다.
註 004
『承政院日記』: “判書金鍾秀 謹將傳敎揭板于堂上廳事”⇒“犯者 官員以制書有違律論 而獄官執告政院 掩置不告者論罪等事 一依續典受敎遵行 仍以此批旨 令廟堂申飭 各司 可也”.
註 005
10일의 기사는 11일에 반복되며,『特敎定式』은 이를 요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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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內侍干殺獄直勘[正祖 13年(1789)]
▷ 내시 살인사건의 직접 처리
今上十三年, 因南陽殺獄罪人韓灌獄事,001
註 001 『受敎定例』: “因南陽殺獄罪人韓灌獄事”⇒“京圻殺獄罪人 韓灌子擊錚原情 回啓”.닫기
判付內, “法典內, ‘朝官通訓以下係干殺越002
註 002 『受敎定例』: “越”⇒“獄”.닫기
, 自斷訊推’, 內侍亦無異同. 此後段, 依朝官例, 京外獄官, 自斷擧行事, 分付, 仍爲知委該003
註 003 『承政院日記』: “該”⇒“諸”.닫기
004
註 004 『受敎定例』·『承政院日記』는 “爲良如敎[하아다이샨]”이 더 있다.닫기
.”

註 001
『受敎定例』: “因南陽殺獄罪人韓灌獄事”⇒“京圻殺獄罪人 韓灌子擊錚原情 回啓”.
註 002
『受敎定例』: “越”⇒“獄”.
註 003
『承政院日記』: “該”⇒“諸”.
註 004
『受敎定例』·『承政院日記』는 “爲良如敎[하아다이샨]”이 더 있다.
항목 상세보기 원본이미지
1.82. 月推未準三次[正祖 13年(1789)]
▷ 월 3차의 신문을 하지 않은 경우
今上十三年, 殺獄罪人金召史, 加刑啓目, 判付內, “査推之命, 今001
註 001 원문은 “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至半歲, 始乃回啓, 何也. 大抵近來, 本曹於死囚之獄, 看作等閒, 月六準式新反, 竝與月一推而不爲, 如許司寇, 焉002
註 002 『承政院日記』: “焉”⇒“將焉”.닫기
用諸. 如是而外方之臥推與不準次, 何以禁止乎. 此後月終錄啓, 以今朔幾次訊推, 罪人名下懸錄, 如或未準三推, 該堂則請推, 該郞則請拿事, 定式, 該房知悉, 載之故事, 以懲獄官怠慢之習”爲旀.
本獄段, 疑晦多端, 本夫竝以待拷訊限滿, 除尋常箇箇各別嚴刑, 期於得情爲有矣, 萬一如前漫漶捧招, 卿等難免其責兺除良, 觀於今此文案問目與結語, 都沒精神, 大不若前判堂之詳明. 判堂雖似不嫺吏文而然, 亞三堂之袖手傍觀, 亦甚未安, 後勿如是.003
註 003 『承政院日記』는 “爲良如敎”이 더 있다.닫기


註 001
원문은 “令”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承政院日記』: “焉”⇒“將焉”.
註 003
『承政院日記』는 “爲良如敎”이 더 있다.
항목 상세보기 원본이미지
1.83. 檢驗厭避[正祖 13年(1789)]
▷ 검험 회피 수령의 단속
今上十三年, 因全羅道樂安郡, 殺獄罪人孫病入老味獄事, 曹001
註 001 『受敎定例』는 “曹”가 없다.닫기
回啓判付內, “樂安郡囚孫病入老味段, 向來判付時, 非不知元犯之專屬此囚, 而第因其名而想其人, 則或慮夫病痿之漢, 未必作002
註 002 『承政院日記』: “未必作”⇒“未必非”.닫기
殺越之擧是遣, 又況渠之前後爰辭, 一直招諉於在逃崔女者, 亦不無些分就議003
註 003 『承政院日記』: “議”⇒“疑”.닫기
之端, 故使之待跟捕究覈以聞. 今焉崔女之供出, 而韓女被踢時光景, 非特暸如指掌, 就其中, 牛黃雞粥之面傳躬饋, 孫家崔屋之此毁彼賣, 以至隔一舍過三稔之相通聲氣者, 輒歸之在逃等, 各項隱迹, 尤明白呈露矣. 曹啓所謂, 誣援渙如氷釋, 情節轉成鐵案者, 誠得之. 另飭推官, 加刑得情. 毋論虛實眞僞, 或同之妻, 鬨場之在傍看證者此也, 兇身之籍口掉脫者此也. 移在接壤之地, 恒作趁虛之行, 則名以根004
註 004 『受敎定例』: “根”⇒“跟”.닫기
捕, 初不致疑, 乃於年久行査之後, 始爲現問者, 揆以獄體, 萬萬稽忽, 該郡守旣經論斷, 勿論, 不飭之道臣, 倂推考爲旀. 兩屍帳之大小相左, 今不必追究, 而卽以前道臣題辭論之, 檢驗之事體, 至爲嚴急, 雖在冬節寒凝之時, 固不容晷刻小緩, 而觀於過去, 守令之在他地方, 亦爲行檢之法, 可知. 則順天·光陽·寶城三倅之互相頉移, 至使夏月屍體腐爛莫憑者, 誠極痛駭, 該005
註 005 원문은 “駭”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道臣之不卽狀勘, 只治刑吏, 失之太寬, 從重推考. 三邑守令段, 待稅穀畢裝發, 竝卽006
註 006 『受敎定例』: “竝卽”⇒“竝以”.닫기
拿問定罪. 擧一可以反三, 自卿曹以此判付, 知委諸道. 若有檢驗時, 謀避報移者是去等, 毋得掩覆007
註 007 『受敎定例』: “覆”⇒“置”.닫기
, 直以依定式拿問重勘之意, 措辭狀聞事, 嚴飭行會, 仍載本曹受敎.”

註 001
『受敎定例』는 “曹”가 없다.
註 002
『承政院日記』: “未必作”⇒“未必非”.
註 003
『承政院日記』: “議”⇒“疑”.
註 004
『受敎定例』: “根”⇒“跟”.
註 005
원문은 “駭”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6
『受敎定例』: “竝卽”⇒“竝以”.
註 007
『受敎定例』: “覆”⇒“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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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上疏請寢[正祖 13年(1789)]
▷ 상소로 취소를 청할 것
今上十三年, 傳曰001
註 001 『正祖實錄』: “傳曰”⇒“敎曰”.닫기
, “依前判下擧行. 無論禁府·本曹, 草記防啓之弊, 不可無一番嚴禁. 有司異於言官與喉院, 若有難於擧行之事, 以上疏陳見, 不害爲執藝之諫, 以002
註 002 『正祖實錄』: “以”⇒“而以”.닫기
草記直請反汗, 如003
註 003 원문은 “與”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喉啓·臺啓者, 事體之屑004
註 004 『受敎定例』: “屑”⇒“猥”.닫기
越, 莫甚於此, 此猶然矣, 甚至藩任005
註 005 『承政院日記』·『正祖實錄』: “藩任”⇒“外藩”.닫기
守土之臣, 間以狀啓直006
註 006 원문은 “直”이 없으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云‘不得擧行, 緣由馳啓’, 寧有如許國體. 此後永革草記請寢之謬例, 外方則令廟堂行會嚴飭, 而如是定式007
註 007 『承政院日記』·『受敎定例』: “定式”⇒“定式之”.닫기
後, 雖政院008
註 008 『承政院日記』: “政院”⇒“政院以”.닫기
草記狀啓爲之者, 切勿捧入事, 載之故事.”

註 001
『正祖實錄』: “傳曰”⇒“敎曰”.
註 002
『正祖實錄』: “以”⇒“而以”.
註 003
원문은 “與”이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4
『受敎定例』: “屑”⇒“猥”.
註 005
『承政院日記』·『正祖實錄』: “藩任”⇒“外藩”.
註 006
원문은 “直”이 없으나『承政院日記』·『正祖實錄』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7
『承政院日記』·『受敎定例』: “定式”⇒“定式之”.
註 008
『承政院日記』: “政院”⇒“政院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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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三堂出禁各六次[正祖 13年(1789)]
▷ 3당상관의 출금 각 6회
今上十三年, 傳曰, “每朔六次出, 而三堂上各出各出001
註 001 원문은 “各出”이 중복되어 있어서 하나를 삭제하였다.닫기
六次事, 定式.”

註 001
원문은 “各出”이 중복되어 있어서 하나를 삭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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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拷訊定限[正祖 13年(1789)]
▷ 고신에 대한 기한
今上十三年, 以代射罪人李敏玉001
註 001 『承政院日記』: “玉”⇒“沃”.닫기
嚴刑三次, 草記, 傳曰, “待拷訊限滿, 次次準次後發配. 此後如有準三次之類, 依此定式施行, 仍以此意分付諸道, 亦爲定式, 可也.”

註 001
『承政院日記』: “玉”⇒“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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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飭開坐[正祖 14年(1790)]
▷ 개좌의 신칙
今上十四年, 敎曰, “今此坐齋而已, 似聞刑·漢兩司不坐云. 坐不坐, 何以懸註耶. 此後則無敢如前, 依例開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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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私掘配飭[正祖 14年(1790)]
▷ 암굴·발배된 사건에 대한 신칙
今上十四年, 傳曰, “近來到配狀之首尾階續者, 私掘露棺罪也. 雖以今日放·未放啓本言之, 十之十卽厥罪, 雖由於邦禁蕩然, 睯不畏法, 嗜訟山地之徒, 亦豈必昔小今多而然乎. 此蓋各該道伯, 不欲行任怨懲一之政, 而不能嚴戢於未然, 事之駭然, 孰甚於此. 況在先朝制法之飭禁, 至爲截嚴, 則諸道擧行, 尤豈敢乃爾. 此後各道一年內, 以此事發配夥然者, 該道臣拿處, 不禁之守令同罪論. 收贖不發配, 只減配文名數, 致有現發, 則難免其責, 以此謄頒朝紙, 仍令該曹飭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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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外邑擊錚直啓[正祖 14年(1790)]
▷ 지방 격쟁의 직계
今上十四年, 傳曰, “擊錚供辭, 刑曹則令次堂今日捧入, 果川·廣州地方則道伯今日內捧入, 水原地方則以其程道之稍遠, 已令地方官捧供直狀啓, 使之定式, 此意知悉, 定式擧行事, 分付畿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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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禁直關[正祖 14年(1790)]
▷ 직접 관문 지시 금지
今上十四年, 傳曰, “纔已判下於原狀, 而因此思之, 直關之弊, 自有禁令, 詳在『大典通編』. 而內司尤與外司自別. 所謂句管者, 次知中官也, 名以官員者, 書題者也, 雖於京司文簿, 以書題爲之之故, 皆用牒呈, 元無通關之規, 況外邑乎. 近來若有行關於外邑之事, 不但大是越法, 又或直關, 則其罪當如何. 令廟堂査問內需司草記, 以憑後弊, 待草記001
註 001 원문은 “記”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批下, 與此傳敎, 行會諸道, 俾無如前昧例之弊”事, 命下矣.

“依下敎, 査問內需司, 則庚子定式之後, 柴穀催促及舍音差汰牌子外, 元無行關於外邑, 又無直關之事云. 近來內司, 姑無冒犯之事, 法久解弛, 難保必無, 更爲嚴飭內司, 一依定式遵行. 此後毋論內司與他司, 若有直關於外邑之事, 則自該邑論報巡營, 自巡營轉報本司, 當該犯科之官員, 草記重勘之意, 一體分付, 何如?”
答曰, “允. 此後若有一毫犯科之弊, 則先自內需司重治, 當該次知中官, 決杖定配, 行首官吏, 亦當刑配, 以此嚴飭各司. 冒犯官員, 亦當一依法典重勘, 卿002
註 002 원문은 “何”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等亦必時時考察, 而右相則不若左相之耆耉, 近來本司坐起, 何不爲擧. 此後003
註 003 원문은 “後”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無或如前抛置, 可也.”

註 001
원문은 “記”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2
원문은 “何”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3
원문은 “後”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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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禁擊錚原情題外[正祖 15年(1791)]
▷ 격쟁원정 표제 외 청구 금지
今上十五年, 西部李靖國擊錚, 捧供啓目, 判付內, “訟理曲直, 不難分曉, 則公決顧何難事. 名以營邑, 今日明日, 推諉爲事, 屢煩呼籲, 屑越莫甚, 嚴飭該道, 毋敢如前漫漶爲旀. 渠雖有至冤切迫之端, 但當就事論事, 擧其不當擧之, 彼隻先故, 登諸奏御文字. 此等習俗, 在朝紳, 猶可痛禁, 況如渠蟣001
註 001 원문은 “饑”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蝨乎. 所謂世累, 亦已昭脫無餘, 官爵自如之人, 則尤可謂皮不存,002
註 002 『春秋左氏傳』 [僖公 14年] “幸災不仁, 貪愛不祥, 怒隣不義, 四德皆失, 何以守國. 虢射曰, 皮之不存, 毛將安傅.”닫기
原情人段, 付之該道, 各別嚴治. 此後勿論山訟·他訟, 泛及題外, 如此說話, 以爲敲003
註 003 원문은 “敦”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撼之計者, 直於曹庭·道庭, 燒火所捧原情後, 勿論訟曲直, 加等勘罪, 仍卽草記或狀聞事, 定式施行. 政院該房故事, 該曹·該道謄錄, 以此判付詳載, 以爲依此遵行之地.”

註 001
원문은 “饑”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春秋左氏傳』 [僖公 14年] “幸災不仁, 貪愛不祥, 怒隣不義, 四德皆失, 何以守國. 虢射曰, 皮之不存, 毛將安傅.”
註 003
원문은 “敦”이나『承政院日記』에 따라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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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科場用奸草記[正祖 15年(1791)]
▷ 과거부정의 초기 보고
今上十五年, 武二所用奸擧子李熺, 充軍草記, 傳曰, “此後自試所弄奸移送者, 照律後草記事, 定式施行. 至於此武士, 聞是武弁守令之弟, 而亦所001
註 001 원문은 “所”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爲若此, 尤爲痛駭. 令訓將除尋常各別嚴棍於慕華館後, 充軍.”

註 001
원문은 “所”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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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憲府吏隷作弊勘律[正祖 15年(1791)]
▷ 사헌부 이예의 폐단과 율적용
今上十五年, 以司憲府書吏李載輝等作弊事, 判付內001
註 001 『承政院日記』: “內”⇒“啓”.닫기
, “前此飭禁, 何等截嚴乎. 法司出禁, 所以正民俗·除民瘼, 而反爲虐民厲民之歸, 其爲痛惡, 百倍甚於尋常犯科. 嚴懲未久, 冒犯依舊002
註 002 『承政院日記』: “依舊”⇒“依重”.닫기
, 如許亂民, 足可謂罔赦. 斂賂捧錢各人等003
註 003 『承政院日記』: “各人等”⇒“各人”.닫기
, 次次嚴刑, 與前受刑, 準三次, 遠地限己身充定軍役. 所004
註 004 원문은 “所”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謂都吏及干連各人等, 加刑一次, 照律嚴處. 身爲掌憲之臣, 刑·漢兩司吏隷之005
註 005 원문은 “之”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作弊, 猶可隨聞痛戢, 甚者, 竝與不飭之堂郞, 發啓006
註 006 원문은 “發啓”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論勘, 事理則然, 考其所爲, 反於是, 痛戢奚論.007
註 007 『承政院日記』: “奚論”⇒“新反”.닫기
長惡如此, 其爲溺職008
註 008 『承政院日記』: “職”⇒“戢”.닫기
之失, 先自法官重勘, 當該憲臺玄重祚, 畿沿投竄, 此後名以憲吏·憲隷, 復踵前習, 侵虐民間者, 當以盜竊財物009
註 009 『承政院日記』: “財物”⇒“財貨”.닫기
律直斷. 以此判付, 載之本曹本府謄錄·政院刑房故事.”

註 001
『承政院日記』: “內”⇒“啓”.
註 002
『承政院日記』: “依舊”⇒“依重”.
註 003
『承政院日記』: “各人等”⇒“各人”.
註 004
원문은 “所”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5
원문은 “之”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6
원문은 “發啓”가 없으나『承政院日記』에 따라 보완하였다.
註 007
『承政院日記』: “奚論”⇒“新反”.
註 008
『承政院日記』: “職”⇒“戢”.
註 009
『承政院日記』: “財物”⇒“財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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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奴主相訟[正祖 14年(1790)]
▷ 노비와 주인의 소송
今上十四001
註 001 원문은 “五”이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年, 因漢城府啓目, 判付內002
註 002 『承政院日記』: “內”⇒“啓”.닫기
, “古之大臣, 先問牛喘, 所以盡其職也, 今之003
註 003 『承政院日記』: “今之”⇒“今日”.닫기
監司, 不識風化之關係至重, 觀於昨日价川事, 可謂寒心. 此訟亦關倫常004
註 004 『承政院日記』·『受敎定例』: “常”⇒“綱”.닫기
, 若使道臣能盡其職, 似此亂民凌主之說, 何徹於九重乎. 令道伯除尋常親執嚴査, 若有一毫近似之事, 則快正犯分之律, 仍以厥漢輪示諸道後, 押付配所, 依流三千里, 新定式於005
註 005 『承政院日記』: “於”⇒“前”.닫기
周流之例. 此後奴犯主山, 而步數當禁之訟, 無論先後曲直, 切006
註 006 『承政院日記』: “切”⇒“絶”.닫기
勿聽理, 所犯奴屬, 嚴刑三次, 遠惡絶島, 仍本役充定, 勿揀赦典. 以007
註 007 『承政院日記』: “以”⇒“仍以”.닫기
此分付刑曹, 載之受敎, 仍又行會諸道, 俾各008
註 008 원문은 “俾各”이 없으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知委列邑.”

註 001
원문은 “五”이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2
『承政院日記』: “內”⇒“啓”.
註 003
『承政院日記』: “今之”⇒“今日”.
註 004
『承政院日記』·『受敎定例』: “常”⇒“綱”.
註 005
『承政院日記』: “於”⇒“前”.
註 006
『承政院日記』: “切”⇒“絶”.
註 007
『承政院日記』: “以”⇒“仍以”.
註 008
원문은 “俾各”이 없으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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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飭拘留[正祖 16年(1792)]
▷ 구류 경계
今上十六年, 輕囚放釋, 傳曰, “因此思之, 名雖拘留, 實則囚係001
註 001 『承政院日記』: “係”⇒“繋”.닫기
, 前此飭敎亦申嚴, 而此等放釋, 不爲擧論. 此後令廟堂, 各別嚴飭, 越法者, 隨現草記論罪, 可也.”

註 001
『承政院日記』: “係”⇒“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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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一日杖不過百度[正祖 18年(1794)]
▷ 하루 장 100대
今上十八年, 傳曰, “朝家001
註 001 『承政院日記』: “朝家”⇒“國家”.닫기
刑政, 自有定制002
註 002 『承政院日記』: “定制”⇒“關和之典”.닫기
, 杖罪毋過百度, 刑訊則定003
註 003 『承政院日記』: “則定”⇒“限”.닫기
004
註 004 원문은 “而”이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닫기
三十, 兼寓拷訊幾日之限005
註 005 『承政院日記』는 “者”가 더 있다.닫기
. 作爲關和006
註 006 원문은 “化”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한편『承政院日記』와『正祖實錄』은 “關和不易之典”이 “關和之典”이라고 표현되어 있다.닫기
不易之典, 而近來有司之地, 率多不遵, 就以今番杖治政院吏事言之, 更爲嚴杖之命, 蓋不知初施百度也. 本曹初不來稟, 一日之內, 前後杖治, 多至百五十之數, 此豈制法之本意也哉. 堂郞頻數遞易, 雖或不嫺法例, 至於吏胥, 則久習曹務, 宜知法之如何, 而不能據例提醒, 致有法外之事, 今姑參酌, 雖不嚴處, 此後則凡於科治之際, 旣施三十刑·百度杖之後, 或有更治之飭敎, 必以旣施幾度, 何以爲之之007
註 007 원문은 “之”이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닫기
意, 更爲草記或入稟, 待下敎擧行事, 依筵敎, 永爲定式, 載之謄錄, 揭壁遵行.”

註 001
『承政院日記』: “朝家”⇒“國家”.
註 002
『承政院日記』: “定制”⇒“關和之典”.
註 003
『承政院日記』: “則定”⇒“限”.
註 004
원문은 “而”이나,『承政院日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註 005
『承政院日記』는 “者”가 더 있다.
註 006
원문은 “化”이나『受敎定例』에 따라 수정하였다. 한편『承政院日記』와『正祖實錄』은 “關和不易之典”이 “關和之典”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註 007
원문은 “之”이나,『受敎定例』에 따라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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