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일 소대(召對)할 때 시독관 조태억이 아뢰기를
"신은 들으니 엄집(嚴緝)의 소(疏) 가운데 각도에 추관(推官 : 죄인을 신문하는 관원)을 택차하도록 한 사실이 있습니다. 신도 소회가 있어 감히 아룁니다. 외방 토포사(討捕使 : 각 진영의 도둑을 잡는 일을 맡은 벼슬)의 임무를 오로지 도적질을 금지시키는 것입니다. 조정에서 반드시 재망(才望) 있는 자를 차송하여 기포(譏捕 : 경계를 펴 강도·절도를 체포하는 일)의 권한을 위탁하여 왔는데 그 중 혹 구핵(究覈 : 죄인의 죄상을 깊이 규명하는 것)에 부지런히 힘쓴 이도 있지만, 양민이 황리(橫罹 : 뜻하지 아니한 재화에 질림)한 자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오직 형장(刑杖)에만 힘써 죄 없이 원통하게 죽은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신도 일찍이 향곡(鄕曲)을 왕래하면서 익히 이런 폐단을 들었는데, 한 사람이 사죄에 해당하는데 열 사람이 죽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저 도적은 잘 다스리는 것으로 이름을 얻은 자는 대부분 형장을 남용한 사람입니다. 주뢰(周牢 : 주리 트는 형벌)·난장형(亂杖刑 : 난장을 가하는 형벌)은 다 반드시 죽이는 형벌인데, 반문(盤問 : 세밀하게 캐묻는 것)할 즈음 그 실상을 얻지 못하여 원통하게 죽는 백성들이 있게 됩니다. 살인자는 진실로 사죄의 법률에 적용되는데 반드시 삼복(三覆 : 사죄)에 대한 세 번의 복심을 시행하는 것은 대개 대벽(大壁 : 사형)을 중히 여기고 형옥(刑獄)을 신중히 하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특별히 동추관(同推官)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가령, 전주 영장(營將)은 판관을 동추관으로 삼고 여산(礪山) 영장은 부사를 동추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또 가령 온양(溫陽) 수령은 영장을 겸하고 있는데 이 고을에는 원래 겸관(兼官)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수령을 동추관으로 삼아 안동(眼同)하여 신문하면 형벌을 남용하는 폐단이 조금 감소될 것입니다."
하고, 정식은 아뢰기를
"소신의 서계(書啓) 중에도 그 폐단을 진술하였습니다. 영장의 임무는 가볍지 않고 중합니다. 근래 당상(堂上) 무변(武邊)이 영장이 되지 않는 자가 있지 않는데 살인은 중형이지만 또한 법장(法杖 : 형구인 곤장의 하나)으로 종용히 반문하는 것은 어찌 인명을 중히 여기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도적을 다스리는 데 이르러 허실(虛實)을 논하지 않고 형장을 함부로 혹독하게 가하여 무복(誣服 : 죄도 없는데 하는 수 없이 형을 복역하는 것)하는 자가 많습니다. 만약 무복하지 않으면 장형에 죽게 됩니다. 도적을 다스릴 즈음 만약 도둑질을 한 자가 모처에 있는 것을 안다고 하면 즉시 비밀 관자(關子)를 본관에 보내어 잡아 와서 대질 신문하는 것은 곧 옛 규정입니다. 지금 충청도 모든 곳의 영장 등의 행위를 살펴보면 다 군관 무리들로 하여금 원적(元賊)을 통솔하게 하여 여리(閭里)에 횡행하면서 적당(賊堂)을 기포(譏捕)하고 있는데 이 무리들은 다 의지할 데 없는 상한(常漢 : 상놈)입니다. 작나(作拏)하면 민간에 뇌물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영장 조수(趙脩)가 도적을 다스리는 방법은 점차 그 폐단이 없으며, 이밖에는 거개 비방하는 말이 많습니다. 충주 영장 김하정(金夏鼎)은 연풍(延豐)에 도적의 일로 사람을 시켜 영저(嶺底) 일로에 기포(譏捕)하면서 시장을 횡행하며 도처에서 폐단을 일으키고 있으며 관문 없이 임의로 체포하고 있습니다. 이 두 세 곳에 이르러서는 극히 놀라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조태억의 아뢴 바의, 도적을 다스릴 때 안동(眼同)하여 추핵해야 한다는 설이 진실로 옳습니다. 영장이 이미 취복(取服 : 죄인에게 그 죄상을 자백 받는 것)을 받은 뒤 비록 고핵관이 변사(變辭)하여 돌려 보내더라도 영장은 다시 혹형을 가하여 취복(取服)을 받고 그만 둡니다. 처음 신문할 때, 자세히 원통한지, 원통하지 않는지를 살피는 것이 온당함이 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하고, 조태억이 아뢰기를
"그 폐단을 바로잡는 것은 다른 계책이 없습니다. 만약 동추관(同推官)과 함께 상의하여 각기 의견으로 소상하게 신문에 참여하면 유익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추관(推官 : 죄인을 신문하는 관원)을 정하는 것은 그만 두지 못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도적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너무 엄하게 하면 반드시 죄 없는 이가 잘못 죽게 되고 너무 너그럽게 하면 반드시 정범(正犯 : 주범)이 법망에 빠지게 되니 너그러움과 엄격함이 중도에 맞는 것이 진실로 극히 쉽지 않다. 그렇지만 너무 엄격하여 죄 없는 이가 잘못 죽게 된다면 도리어 너그럽게 다스려 범법자가 혹 빠지는 것만 못할 것이다. 도적을 다스리는 방법은 대체로 이러한 것이다. 유신의 아뢴 바 동추관의 설은 의견이 없지 않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상한(常漢) 무리들은 각각 역(役)의 명칭이 있으나 가난한 백성들은 군포(軍布)를 판출할 수 없어 혹 절도하는 폐단이 많습니다. 이들을 이미 영장이 잡아 치죄하였으나 본관은 이들이 모처에서 죽었는지 알지 못하여 물고(物故) 입안(立案)을 내어 주지 않고, 인족(隣族)에까지 침범하게 되니 백성들에게 피해가 대략 이와 같습니다. 이후에는 도둑으로 잡혀 온 자에게는 비록 승관(承款 : 죄인의 자백)을 받은 뒤이라도 역(役)의 명칭과 거주지를 자세하게 물어야 하겠습니다. 영장은 각기 관청에 관문을 보내 물고(物故) 공문을 내어 주도록 하고 즉시 대립(代立) 장정(壯丁)을 정하여 인족(隣族)에게 이르게 됨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일분(一分)쯤이라도 폐단을 바로잡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유신의 아뢴 바가 조금 나은 효과가 있을 듯하다. 이에 따라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검토관 정식이 아뢰기를
"면계(勉戒)하는 말은 조태억이 이미 우러러 아뢰었습니다. 일심으로 천지신명에 대하니, 재앙이 상서로 변하여 연일 동안 단비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실상 성상(聖上)께서 하늘에 실심(實心)으로 응한 것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실혜(實惠)가 없으면 천심을 즐겁게 하지 못합니다. 제도(諸道)의 장문(狀聞) 및 어사의 염문(廉問) 중 민폐가 절급한 것은 묘당에 분부하여 파할 것은 파하고 견감할 것은 견감하면 실혜가 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속히 회계(回啓)하여 묘당에 분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