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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18호] 2장 -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 관련 질의응답(12조, 20조) 이미지뷰어 새창

  • 1948년 06월 26일
◯專門委員(權承烈) … 第十二條는 良心의 自由와 良心을 限界… 權泰羲氏 朴海楨氏 朴順碩氏 黃炳珪氏 金景道氏 諸氏께서 質問하신 것이고 그 以外에는 宗敎團體가 自律的으로 財産을 取得 所有 保管하고 宗敎的 敎育的 慈善的 機關을 建營할 權利를 保障하며 이러한 事業에 關聯한 免除가 明示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張勉 先生이십니다 그리고 本條의 信仰自由의 規定과 第八條의 關係 如何라는 것이 있고 第八條 一項에 信仰自由가 包含된 것이 아닌가 權泰羲氏 朴海楨氏 그랬습니다 第十二條는 『모든 國民은 信仰과 良心의 自由를 가진다』 法律이 어떤 程度로 國民生活을 取扱하겠는가 이 問題입니다 사람이 自己들이 생각하는 意思가 發動되어서 外部에 나타난 것을 取扱하겠는가 이것은 自己 마음속에 있는 것을 發表 안 하는 以上 法律이 限界할 道理가 없습니다 그래서 外界에 波紋을 일으켜야 波紋이 좋겠다 나쁘다 하는 것을 判斷할 것이지 波紋이 일어나지 않은 남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이 편 쪽에서 推測해서 決定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各國의 憲法을 보면 良心의 自由 信仰의 自由를 取扱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良心의 自由를 없애버리고 惡心의 自由를 만들 것이라는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良心을 尊重한다는 意味일 것입니다 良心을 尊重한다는 것은 即 마음을 自由로 쓸 수가 있다는 것을 保障하는 것인데 法律的으로는 保障합니다마는 良心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고 또 外國 憲法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써넣습니 本條의 信仰의 自由와 八條와의 關係를 말씀하셨는데 第八條는 『信仰 또는 社會的 身分에 依하야』 이랬는데 八條가 取扱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까 或은 이 宗敎로 해서 權利 等에 影響을 주면 안 되겠으니까 그러한 意味에서 八條가 들어가고 있는 것이고 即 말하자면 權利 義務를 制定하는 때에 이 八條의 精神을 넣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十二條는 宗敎나 信仰 即 우리가 第一 崇高한 人間의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良心의發動이나 自己가 옳다고 믿는 것을 自己 뜻대로 나가는 것을 主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한 自由이니까 八條와는 關係가 없습니다
◯專門委員(兪鎭午) 十五條 以下에 關한 質疑에 關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前에 잠깐 信仰과 良心의 自由에 關해서 補充的으로 한 가지 말씀을 드리면 信仰이나 良心이나 다 마음속의 일입니다 그러나 憲法에 信仰의 自由라면 다만 마음속에 있는 信仰 自由뿐만 아니라 禮拜의 自由 或은 信仰을 傳道하는 自由 그런 것을 包含한다고 할 수가 있고 또 良心의 自由도 純全히 마음속에 關한 問題입니다마는 무슨 盟誓 같은 것을 强制當하지 아니하는 自由를 包含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自己 良心으로는 不可하다고 하는 것을 强制로盟誓를 當하지 않는다 그 意味를 包含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陳憲植議員 二十條의 良心의 自由라는 問題에 對해서 良心 自體를 外力으로서 制限할 수 있는지 없는지……
◯專門委員(權承烈) 말씀을 仔細히 못들었습니다마는 良心의 自由는 아까도 말씀한 바와 같이 良心은 精神上에 있는 心的 存在입니다 心이 通해서 意가 되고 智가 되는 것입니다 心的 存在를 法律이 制定한다고 해도 그것은 無意味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良心의 自由는 아까 兪鎭午委員 말씀과 마찬가지로 或 宣誓를 强制한다거나 그런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宣誓를 시킨다는 것은 사람의 行爲를 强要하는 것이고 行爲가 强要될 것이지 即 사람의 行動이 外界에 波紋을 일으키는 것이 될 것이고 良心은 사람의 몸둥이에 있는 고요한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法律로서 어떻게 定한다는 것은 할 수가 없을 것이고 다만 良心은 우리들이 尊重한다는 意味로서 解釋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吳澤寬議員 十二條 二項에 『國敎는 存在하지 않으며 宗敎는 政治로부터 分離된다』 이것은 무슨 意味의 內容으로 揷入했는지 說明해 주시기를 바랍니다◯專門委員(權承烈) 十二條 二項은 實로 現在에서는 衍文입니다 그러나 從來에 歷史的 關係가 있어서 그와 같은 것을 넌 데에 不過합니다 아직도 아마 이 世界에서는 政治와 宗敎가 分離 안 된 나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勿論 여러 가지 關係도 있고 우리나라는 그것과는 다르겠습니다마는 歷史的 關係 그러한 形跡이 조곰 남어 있는데 이것은 여러분의 意思에 따라서 決定될 것입니다
◯李聖學議員 十二條의 信仰의 自由라고 하는 것은 重大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보면 普天敎니 白白敎니 이런 宗敎들에게도 恣意로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나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專門委員(權承烈) 勿論 端的으로 말하면 信仰이라는 것도 心的 自由일 것입니다 自己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信仰하든지 다른 사람이 알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憲法에 나타난 信仰의 自由는 信仰을 外界에 나타나도록 하는 그 意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普天敎니 그런 것이 人心을 紊亂한다든가 그것은 한 犯罪行爲이니까 勿論 여기에 들지 않습니다 그 宗敎의 意識 如何가 우리 國民生活에 有助하냐 안 하냐 하는 데에 있어서 解決하게 될 것입니다

주요용어
권승열, 유진오, 진헌식, 오택관, 이성학/헌법안 제1독회, 기본권,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 정교분리
(1) 제헌국회 속기록 1 : 헌법 전문·총강 및 기본권에 관한 논의
국회에 제출됐던 초안은 대한국민이 “3.1 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전문에 적었으나, 제22차 회의에서 국회의장 이승만은 우리에게 특유한 민주주의는 일찍이 일본과의 투쟁에 진력하면서 자발적으로 이룬 것임을 강조한다는 취지에서 “대한민국은 기미년 3.1 혁명에 궐기하여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하였으므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독립의 조국 재건을 하기로 함”이라 할 것을 제의했고(#125), 제3독회에서도 이를 부연하여 기미년에 세웠던 민주정부를 토대로 이제 국가를 재건한다는 점을 넣을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승만의 취지를 반영하여 윤치영이 “대한민국은 기미년 3월 혁명으로써 대한민국을 수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지금 독립 민주정부를 재건”한다는 전문 수정안을 제시하였으나 이에 대하여는 ‘혁명’이라는 어구가 1919년 당시의 일본 정권의 정통성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등의 이의가 제기되었고, 이어 국회가 백관수, 김준연, 이종린, 최국현, 윤치영 5인의 의원을 지정하여 전문의 당일 성안을 위임했다(#172). 註01
註01
이 중 백관수, 김준연, 이종린은 기초위원회 위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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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5인이 그 날 오후에 작성하여 가결받은 것이 제헌헌법의 전문으로 성안되었다(#175).
한편 총강 영역에서는 제4조(영토조항)에 태극기를 국기로 함을 추가하자는 동의(박종환 외 12명)는 국기를 새로 제정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는 반대 끝에 부결되었고(#126), 헌법상 ‘국민’을 모두 ‘인민’으로 고치자는 동의(진헌식 외 44명)는 ‘인민’으로 규정한다고 하여 헌법의 외국인에게 적용되는지의 여부에 차이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등의 반론에 부딪쳐 부결되었다(#132). 그밖에 제3독회 과정에서 제7조 제2항에 “외국인의 법적 지위는 국제법, 국제조약과 국제관습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국내의 외국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를 천명하자는 제안(진헌식 외 44인)이 받아들여졌다(#170).
기본권 영역에서 논의를 통해 초안으로부터 내용이 변경된 영역은 ① 의무교육의 범위(제16조 제1항), ②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제18조 제2항 신설), ③ 그리고 혼인에서의 남녀동권과 순결 및 가족건강의 보호(제20조 신설)이다. 먼저 의무교육에 관하여는 이를 “초등교육”이라고만 규정한 초안에 대하여 “적어도 초등교육”이라 함으로써 확대가능성을 두자는 제안(주기용 외 49명)이 받아들여졌고(#137), 혼인조항에 관해서는 남존여비 사상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쉽게 채택되었다(#144).
이와 달리 가장 열띤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근로자의 이익균점권과 경영참가권에 관해서였고, 논의는 제24,25차의 두 회의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당초 그 제안자인 문시환은 “근로자는 노자협조와 생산증가를 위하여 법률의 정하는 범위내에서 기업의 운영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는 근로자의 경영참가권도 함께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해방 후 대부분의 파업이 경영참가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의 노자협조를 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일·이탈리아에서 그 헌법례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전진한은 특히 敵産은 자본가에게 독점시킬 것이 아닌 민족의 共産이라는 관점에서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익균점권과 경영참가권 중 하나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異論이 등장한 뒤 전체 이윤을 경영자와 근로자가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 아니라 다소의 이익을 근로자에게 배당한다는 취지에서 “이익배당의 균점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자는 수정안이 등장하였고, 두 안을 두고 표결을 거친 끝에 조병한의 안이 가결되었다(#140,#141). 그런데 제3독회에서 조병한은 취지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설명하면서 위 문구를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註02
註02
당초 가결될 당시의 수정안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률로써 정한다”고 규정한 제17조에 이익균점권 항을 신설하는 내용이었으나, 제3독회 과정에서 조병한은 이 항을 근로3권을 규정한 제18조로 옮기면서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를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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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문구로 번안동의하였고, 이 동의가 가결되면서 나머지 문제는 “법률”로써 정하기에 달려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174).
그 외에 제12조의 ‘양심’ 외에 ‘사상’의 자유도 규정하자거나 정교분리 원칙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모두 부결되었다(#134).
註01
이 중 백관수, 김준연, 이종린은 기초위원회 위원이기도 하였다.
註02
당초 가결될 당시의 수정안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률로써 정한다”고 규정한 제17조에 이익균점권 항을 신설하는 내용이었으나, 제3독회 과정에서 조병한은 이 항을 근로3권을 규정한 제18조로 옮기면서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를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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