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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17호] 헌법 제1독회 - 헌법의 정신 및 주 논점 소개 이미지뷰어 새창

  • 1948년 06월 28일
◯徐相日議員 이 憲法의 草案은 우리 나라 現下 憲法의 權威家인 서울大學敎授로 있는 兪鎭午氏를 中心으로 해서 此界 專門家가 모인 小委員會에서 이 案을 月餘를 두고 많이 檢討를 거듭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案을 中心으로 해서 司法府內의 法典編찬委員會가 있읍니다 그 委員會에서 또한 이 案을 中心으로 해서 原則은 그대로 두고 大槪로는 修正을 아니하는 參考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이 憲法案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大韓民國 臨時政府 憲章 現 民主議員에서 制定된 臨時憲章 過度立法議院에서 制定한 約憲 等々을 綜合하고 그 外에 歐美 各國에 現在에 있는 모든 憲法을 綜合해서 이 原案이 起草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中心으로 해서 우리 起草委員會 三十名과 또 司法府 裁判所 法曹界 中央經濟會 各 學校 敎授 等 各界의 權威者를 網羅해서 十名의 專門委員을 合해서 四十名이 六月三日부터 六月二十二日까지 十六次 會議를 거듭해서 이 案을 原案을 中心으로 하고 參考案을 中心으로 해서 이 草案이 나오게 되어서 여러분 앞에 配付되어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 憲法 草案은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國家 民族의 萬年大計의 基礎法인 것은 勿論입니다 그러한 同時에 우리 三千萬과 우리들의 子孫萬代가 自由스럽고 平和스럽고 永遠한 幸福을 누리기를 願하는 民主々義 國家를 建設하려고 하는 基本的 設計圖인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의 路線은 두 가지 밖에 없는 것입니다 獨裁主義 共産國家를 建設하느냐 民主々義 國家를 建設하느냐 하는 데 있어서 이 憲法 精神은 民主々義 民族國家를 建設하려는 한 基本設計圖를 여기에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 憲法의 精神이 여기에 있고 또한 이 憲法의 制定은 우리들의 萬年大計를 展망해서 兪鎭午 委員을 中心으로 여러분이 만드는 原案을 起草해서 우리 四十名 委員들이 모여서 憲法을 將來를 展망 해서 만든 것입니다 憲法의 精神을 要約해서 말씀하자면 어데 있는고 하면 우리들이 民主主義 民族國家를 構成해서 우리 三千萬은 勿論이고 子孫萬代로 하여금 現 時局에 適應한 民族社會主義 國家를 이루자는 그 精神의 骨子가 이 憲法에 總集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大槪 憲法의 由來는 이만한 程度로 말씀드리고 憲法 內容에 있어서 가장 重要되게 討論되었든 몇 가지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겠읍니다
하나는 이 原案은 第一章으로부터 十章까지 全條가 一條로부터 百二條까지인데 第一章 總則에 國號問題가 많이 말이 있었읍니다
大韓民國으로 하느냐 高麗共和國으로 하느냐 或은 朝鮮이라고 이름을 定하느냐 或은 韓이라고 하느냐 하는 國號問題가 많이 論議가 되었든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그 다음에 第二章 國民의 權利 義務 章에 가서 이 憲法에서 獨特하게 나타난 點은 이 憲法 精神의 構成과 將來 展망을 말씀한 바와 같이 거기에 依支해서 말씀하면 特權階級 一切를 特殊階級 制度를 否認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社會的 經濟的 文化的 政治的으로 모든 領域에 있어서 우리 三千萬과 아울러서 우리들의 子孫萬代가 均等한 社會를 이루자는 그러한 權利 義務를 設定된 것이 우리 憲法의 重要한 骨子 精神인 것을 여러분이 理解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十條에 勤勞者의 權利 義務를 規定 하였읍니다 勤勞條件과 規定은 法律로서 定한다 하였읍니다 그러면 勤勞者에 對한 特殊한 規定이 나타난 것입니다 十八條에 있어서는 勤勞者와 團結權과 團體交涉權과 團體行動의 自由權을 認定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要約해서 말하면 二章 權利 義務에서 뚜렸이 色彩가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三章에 있어서 國會 問題에 있어서 兩院制로 하느냐 單院制로 하느냐 하는 것으로 많이 論議가 있었읍니다 原案에 있어서 兩院制로 提出되었든 것이 單院制로 變更이 되었읍니다 또한 四章에 있어서 政府 章에 가서 大統領 責任中心制로 하느냐 內閣 國務總理中心制로 하느냐 하는 問題로 많이 論議가 되었든 것인데 이것이 여러 各度로서 現下 朝鮮 政治情勢에 비추어 모든 將來를 展망해서 政治的 安全 勢力을 確保하는 意味에 있어 가지고는 우리들이 여기서 大統領中心制로 採用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五章에 法院 章에 가서 萬一 違憲問題가 생길 때에 이것을 어데서 最終 判決하느냐 하는 問題에 있어서 憲法委員會를 設置하기로 하였읍니다 大法院 五名 國會委員 五名으로 三分之 二以上의 贊成으로서 違憲問題를 最後 審決定하기로 揷入이 된 것입니다
六章 經濟 便에 있어서 八十三條에 우러들의 經濟生活에 있어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는 萬民均等 經濟原則을 第八十三條에 確然히 確立을 했습니다 또 十章 附則에 있어서의 特殊한 點은 惡質的인 反民族的 行爲를 處罰하는 特別法을 우리 國會에서 制定할 수 있게 되있읍니다 이것은 民族正氣를 살리기 爲해서 이 條文을 넣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서 簡單히 제가 여러분에게 우리 委員들이 모여서 進行해 온 大體의 內容의 一端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우리 委員會에 各處로부터 많은 請願書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여러분의 그 意見을 많이 參酌해서 여기에 反映시켰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로서 大體說明의 內容을 簡單히 여러분에게 紹介해 드리는데 끝이고 이 憲法의 專門 權威家이신 兪鎭午委員 으로부터 大槪 兩院制 單院制의 利害得失이라든지 內閣中心制 或은 大統領中心制의 利害得失에 對해서 여러분이 充分히 들으실 必要가 있다고 해서 紹介해 드리는 바이니 잘 靜聽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요용어
서상일, 유진오/헌법 기초위원회, 헌법안 제1독회, 법전편찬위원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 민주의원 임시헌장, 과도입법의원, 조선임시약헌 국호, 고려공화국, 조선
(1) 제헌국회 속기록 1 : 헌법 전문·총강 및 기본권에 관한 논의
국회에 제출됐던 초안은 대한국민이 “3.1 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전문에 적었으나, 제22차 회의에서 국회의장 이승만은 우리에게 특유한 민주주의는 일찍이 일본과의 투쟁에 진력하면서 자발적으로 이룬 것임을 강조한다는 취지에서 “대한민국은 기미년 3.1 혁명에 궐기하여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하였으므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독립의 조국 재건을 하기로 함”이라 할 것을 제의했고(#125), 제3독회에서도 이를 부연하여 기미년에 세웠던 민주정부를 토대로 이제 국가를 재건한다는 점을 넣을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승만의 취지를 반영하여 윤치영이 “대한민국은 기미년 3월 혁명으로써 대한민국을 수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지금 독립 민주정부를 재건”한다는 전문 수정안을 제시하였으나 이에 대하여는 ‘혁명’이라는 어구가 1919년 당시의 일본 정권의 정통성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등의 이의가 제기되었고, 이어 국회가 백관수, 김준연, 이종린, 최국현, 윤치영 5인의 의원을 지정하여 전문의 당일 성안을 위임했다(#172). 註01
註01
이 중 백관수, 김준연, 이종린은 기초위원회 위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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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5인이 그 날 오후에 작성하여 가결받은 것이 제헌헌법의 전문으로 성안되었다(#175).
한편 총강 영역에서는 제4조(영토조항)에 태극기를 국기로 함을 추가하자는 동의(박종환 외 12명)는 국기를 새로 제정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는 반대 끝에 부결되었고(#126), 헌법상 ‘국민’을 모두 ‘인민’으로 고치자는 동의(진헌식 외 44명)는 ‘인민’으로 규정한다고 하여 헌법의 외국인에게 적용되는지의 여부에 차이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등의 반론에 부딪쳐 부결되었다(#132). 그밖에 제3독회 과정에서 제7조 제2항에 “외국인의 법적 지위는 국제법, 국제조약과 국제관습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국내의 외국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를 천명하자는 제안(진헌식 외 44인)이 받아들여졌다(#170).
기본권 영역에서 논의를 통해 초안으로부터 내용이 변경된 영역은 ① 의무교육의 범위(제16조 제1항), ②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제18조 제2항 신설), ③ 그리고 혼인에서의 남녀동권과 순결 및 가족건강의 보호(제20조 신설)이다. 먼저 의무교육에 관하여는 이를 “초등교육”이라고만 규정한 초안에 대하여 “적어도 초등교육”이라 함으로써 확대가능성을 두자는 제안(주기용 외 49명)이 받아들여졌고(#137), 혼인조항에 관해서는 남존여비 사상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쉽게 채택되었다(#144).
이와 달리 가장 열띤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근로자의 이익균점권과 경영참가권에 관해서였고, 논의는 제24,25차의 두 회의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당초 그 제안자인 문시환은 “근로자는 노자협조와 생산증가를 위하여 법률의 정하는 범위내에서 기업의 운영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는 근로자의 경영참가권도 함께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해방 후 대부분의 파업이 경영참가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의 노자협조를 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일·이탈리아에서 그 헌법례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전진한은 특히 敵産은 자본가에게 독점시킬 것이 아닌 민족의 共産이라는 관점에서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익균점권과 경영참가권 중 하나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異論이 등장한 뒤 전체 이윤을 경영자와 근로자가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 아니라 다소의 이익을 근로자에게 배당한다는 취지에서 “이익배당의 균점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자는 수정안이 등장하였고, 두 안을 두고 표결을 거친 끝에 조병한의 안이 가결되었다(#140,#141). 그런데 제3독회에서 조병한은 취지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설명하면서 위 문구를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註02
註02
당초 가결될 당시의 수정안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률로써 정한다”고 규정한 제17조에 이익균점권 항을 신설하는 내용이었으나, 제3독회 과정에서 조병한은 이 항을 근로3권을 규정한 제18조로 옮기면서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를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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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문구로 번안동의하였고, 이 동의가 가결되면서 나머지 문제는 “법률”로써 정하기에 달려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174).
그 외에 제12조의 ‘양심’ 외에 ‘사상’의 자유도 규정하자거나 정교분리 원칙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모두 부결되었다(#134).
註01
이 중 백관수, 김준연, 이종린은 기초위원회 위원이기도 하였다.
註02
당초 가결될 당시의 수정안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률로써 정한다”고 규정한 제17조에 이익균점권 항을 신설하는 내용이었으나, 제3독회 과정에서 조병한은 이 항을 근로3권을 규정한 제18조로 옮기면서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를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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